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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Oct 26. 2024

스쿠터 소리에서 들리는 삶과 죽음

존재의 유무

수애는 두려워졌다. 규칙적이지 않은 호흡과 널뛰는 심장을 해결해 보려고 도서관이 보이자 들어가는 것을 잠시 미루며 도서관 주변을 한 바퀴 더 돌겠다고 마음먹었다. 돌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고 있는 에코백을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소리가 끊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미루고 미루던 전화기를 들고서도 선뜻 귀 가까이 수화기를 대지 못하고 있었다.


울리는 소리에서 부정적 사연을 눈치챘을까. 마음으로 짐작했을 뿐일까. 어두운 그림자가 구름을 가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듯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다급한 소리를 분석하던 순간 수화기를 뚫고 나온 소리는 분명히 수애가 아는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사고예요... 영성이!"


->지난 화에 이어서


영성의 엄마가 타고 다녔던 스쿠터를 수애는 매번 인상 깊게 보았었다. 여러 일을 병행하느라 그녀의 색채는 흐린 회색이 가득했고  빛에는 피곤함이 역력하게 묻어 있었다. 반면 스쿠터라는 동력은 얼굴 이면에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이었다. 한 번씩 수애의 귀에 스쿠터 소리가 울림처럼 들리고 나면  영성이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멀찌감치 서서 지켜볼 수 있었다. 영성은 엄마가 자신에게 헌신하는 것도, 신을 향한 무조건의 신앙심으로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이는 것도, 신의 세상에서의 규율을 잊지 않고 지키려는 것도 엄마 스스로  마음에 빚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사실 이해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만 보면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가 더 많았지만. 엄마와의 대화는 항상 그 지점에서 멈췄고 마치 요즘 같은 계절에 바람은 다른 힘으로 두 사람의 격렬한 소리를 실어 먼 곳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사고예요... 영성이가!!" 


처음 토론을 시작으로 가까이에서 봐온 영성은 호기로웠고 실천했으며 긍정적이었다. 윤이와 영성이 우정이 깊은 친구였기에 윤이를 통하여 한 번씩 영성의 아픔과 그 속에 잠식한 분노를 들을 수 있었다. 수애는 겉으로 드러난 '밝음' 이면의 영성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결핍에 대해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수학 토론이 더 좋은 결과에 닿을 수도 있으리라 소망하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수학 토론의 긍정적 효과를 생각하면점점  퍼져 나가길 기대하고 있었다.


유난히 해가 짧았으며 가을 깊은 곳에 배달된 찬 기운이 넘치던 어느 날, 차갑고 우울한 모습으로 엄마와 말다툼하던 영성의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았다. 스쿠터 소리와 영성은 항상 함께 다녔다. 영성은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미움보다 큰 사랑이 있었기에 괴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애는 영성이가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 처음부터 외동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날도 수애의 귀에 들렸던 스쿠터 소리 이후 영성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교양교실 문을 급히 나섰다. 그날따라 좀 다른 분위기에 수애는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영성의 여동생이었고 수애에게 던져진 충격은 갑자기 등장한 그 존재가 지금은 사라졌다고 다.


수애는 심장이 두근거렸고 긴 시간 그녀를 괴롭혀왔던 두통이 되살아난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존재의 유무에 대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오늘 갑자기 수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녀는 오늘 갑자기 수애 머리에 각인이라는 것을 시켜주고 갑자기 사라졌다. 안개로 뒤덮인 강나루에서 가을 새벽 예상하지 못한 형체가 존재했으나 그 형체가 사라진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사라짐, 소멸에 상응되는 수, 수애가 사랑하는 수 '0'을 다시 떠올려본다. 수애가 사랑하는 숫자 '0'은 그녀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닿았다. 첫째, (영)'0'은 문, 통로를 의미한다. 들어가고 나오는 문인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숫자 '0'은 경계를 의미한다. 그 경계에 수애는 오늘도 괴로운 모습으로 서있다. 프레임이라는 것에서 시작해 살고 있는 세계의 전환, 의식의 전환이 되기도 한다. 또 숫자'0'을 전환이라는 개념에 옮겨본다. 속도를 생각해 보면 속도가 '0'이 되는 순간 방향의 전환이 일어난다. 위치 에너지가 0인 순간 운동에너지는 최대, 운동 에너지가 멈춘 순간 위치에너지는 최대가 되는 것이다.


수애에게 충격적으로 닿은 삶과 죽음은 오늘 다시, 그날 울렸던 미세한 떨림을 전달했다. 수애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의도치 않게 다가온 삶과 죽음이 불안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영성을 떠올리며 그 아이의 아픔을 다시 들여다본다. 무슨 일일까. 자신의 불안보다는 가볍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택시를 타고 차 안에서 안절부절 겪는 마음보다는 더 바쁘고 정신없이 달렸다.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거리는 어느 정도였는지 무슨 인사를 하고 택시에서 내렸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택시가 움직이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수애는 여기저기 정신없이 움직이다 멀리 아련히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멈춰 섰다.


보기보다 씩씩한 모습으로 항상 스쿠터를 타고 다녔던 영성의 엄마였다. 두 눈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 물고여있었 깜박임이 있을 때마다 눈은 연신 눈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색깔을 잃은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딱 적당한 거리에서 수애를 보자 영성의 엄마는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애원을 했다. 마치 진심으로 도와달라는 듯. 수애는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영성이 엄마를 외면할 수 없어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서 휘청이는 몸을 잡았다.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의 영성이 엄마가 눈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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