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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Nov 30. 2024

따뜻한 위로

차가운 위로

《차가운 위로》_수학 토론에 빠지다


이후 수애의 세상에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을 향한 연민이 유별나다고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어쩌면 치유받지 못한 수애 내면의 상처가 그녀를 끝끝내 잡고 있었고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마음을 돌려놓았는지도 모른다.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사랑은 길을 잃고 눈과 귀가 없이 그림자의 형체만 있는 것이라 여겼다. 사랑이라는 큰 마음을 계속해서 누르고 눌러왔다. 경옥은 수애를 볼 때마다 망설였었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었다고 말하겠다고 결심했으나 그럴 때마다 수애가 더 걱정되었다. 거칠어지는 호흡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참고 미뤄왔었다. 경옥은 가리덮어버린 것들, 그게 수애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와 짐으로 남아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어서


경옥은 수애가 얼마나 오랜 시간 방황하고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 빠져서 딸의 안위를 걱정했을 때는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동생이 가족의 곁에서 사라진 열한 살의 어느 시점부터 얼마 전 토론을 하기 전까지 수도 없이 크고 작은 폭풍우가 수애를 괴롭혀왔다. 그 폭풍은 외부보다는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가장 크고 막강한 힘으로 장기를 잘 덮고 있는 수애의 피부 표면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모순적인 건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가 더해질수록 표면적으로는 무뎌졌다. 덜 아픈 게 아니라 감정이 익숙함에 젖어 이제는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무심함이나 무뎌짐은 수애가 살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막강한 방어기제의 하나다.


일곱 살 동생이 사라진 어느 날, 수애가 라면을 끓이고 다.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수애 옆에서 어린 동생이 자신보다 두, 세 배는 더 큰 누나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아 가슴 가까이에 올리고 한 번씩 침을 꼴깍 삼키고 있다. 위험하고 어수선하니까 한걸음 물러서 있으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 다시 입을 닫았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애매한 시간이다. 막내와 수애 둘 사이를 따뜻하게 연결하고 메웠던 일곱 살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동생을 잘 다독이며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게 했던, 수애에게 오빠처럼 포근했던 일곱 살 동생. 다소 왜소했으나 속은 언제나 꽉 차 있었고 그 아이는 신기하게도 열한 살인 자신의 내면보다 깊은 것처럼 보였다. 동생과 함께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이 언제나 든든했다. 어릴 적 수애는 한 번씩 상상을 하곤 했다. 어른으로 성장한 후의 모습에 대해. 이후에도 동생이 그녀의 보호자처럼 느껴질까.


동생은 어린이의 날을 이틀 앞둔 금요일 저녁부터 수애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수애는 이후 함께했던 이 삼일 가량을 더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순간의 기억은 어린 수애가 견디기 위해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망각하기 위해 뇌에서 특별한 기능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엄마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할까. 경옥은 장례식장에서 어린 수애가 흔들리는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을 때 자신을 놓아버렸다. 절규하고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을 마음껏 누리고 드러냈다. 그래야 살아감,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애가 고스란히 지켜내야 할 건 너무나 많았으나 엄마마저 잃거나 사라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평소보다 훨씬 감정적인 모습의 엄마를 멍하니 쳐다보며 다짐했다. 엄마만큼은 자신이 꼭 지켜내리라 나이를 온통 덮고 있는 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평행선이 시작되었다. 기울기가 같은 두 직선인, 두 사람의 모습에서 경옥이 걷던 길과 수애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았다. 가끔 완만해지는 듯 보이나 환경에 따라 그만큼 느슨해지기도 했고 그럴 때는 더 긴장감 있게 서로를 자극하고 잡아주었고 너무나 팽팽해지면 한쪽에서 탄성을 잃은 듯 물러서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애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공간에서 두 직선의 위치 관계 가운데 두 직선이 일치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 정리와는 다르게 경옥과 자신의 관계는 평행한 관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이라기보다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유사점이 더 많은 관계처럼 느껴졌다.


수애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주변을 보는 눈을 흩트리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 문제를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고 풀어가는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내면에 깔린 우리의 기본 정서와 의식은 가볍게 여기며 문제 해결에만 마음을 빼앗겨서 전체를 보지 못한 건 아닌지 돌아본다. 정답보다 과정에 집중하자고 아이들을 흔들고서는 자신의 트라우마에도 휘청거리며 떨림보다 큰 흔들림을 잠시 무시하고 외면하며 지난 건 아닌지.


지금 영성과 윤이 등 친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건 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한결같이 기다릴 수 있고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보호벽이 아닐까 하는 결론으로 닿았다. 갑자기 찾아온, 때 이른 12월 추위가 심장 깊숙한 곳까지 떨림을 안겨주니 무심한 감정이 건드려진 걸까. 친구들을 생각하며 긴장된 추위를 견뎠고 근육통이 느껴지듯 어깨와 가슴까지 뻐근해졌다.


수애는 떨림과 설렘으로 도서관 교양교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친구들이 언제 다시와도 보호벽이 될 수 있는 편안한 곳, 들러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덧.

[차가운 위로_ 수학 토론에 빠지다]를 2~3화 더 연재한 후 마무리합니다. 따로 브런치 북을 만들기에는 분량이 부족한 듯하여

30화 후 따로 이렇게 연재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은 2024년의 마지막 달, 12월의 첫째 날입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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