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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Nov 23. 2024

실타래를 풀다

계절을 보내다

[차가운 위로_수학 토론에 빠지다]


수애는 다시 묻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삶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자신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은 새로운, 다른 발견의 순간에 있다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영성과 윤이와 한결을 생각하며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강연 중 어떤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며 문득 그 친구들이 떠올랐고 수애가 수학을 하는 깨달음이 그 아이들에게도 닿아 그녀가 느끼게 된 행복한 감정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수애는 영성이와 영성의 엄마를 보며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천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본다. 한결이 느끼는 연결과 단절의 의미를 수애도 고민하고 있었고 관계의 인연이 맺어준 삶의 긴 끈을 들고 길이와 무게를 재고 있었다. 갈등의 매 순간이면 오히려 그 아이들이 자리를 지켜주었고 수애의 마음을 잡아 주었을까. 최근 영성이의 사고 이후 윤이가 토론이 있을 때마다 늦어지면서 수애는 더 흔들리고 있었다. 수애가 하고 있는 활동들은 앞으로 그녀가 속해있는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확장시켜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어쩌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수애의 심경의 변화를 엄마 경옥은 눈치채고서도 모른 척했고 밤이면 그녀의 깊은숨을 짚고서도 애써 외면해 다.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우리가 오래전부터 습관적으로 쓰고 있던 그런 말들을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새 뒤척이고 겨우 일어난 딸을 보며 내면에 쌓인 화가 터져버릴 것 같아 참을 인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자기 최면을 걸듯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눈빛도 까칠해진 딸에게 무게를 줄인 걱정의 마음을 건넨다.

"요즘 어디 아픈 건 아니니? 무슨 일 있니?"

무심한 듯 부피보다 가벼운 너스레를 전했다. "아니"

짧은 단답에 따뜻한 마음을 연결해 가려던 경옥의 연민은 정하게 식어버렸다. 아주 오래전 경옥이 풀어낸 등호만큼 수애가 겪어낸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말을 이을 수는 없었다.  


수애네 집에는 지금 엄마를 외면하고 우리나라를 등진 남동생 위로 다른 한 명의 남동생이 더 있었다. 수애가 열한 살 때, 그 아이는 수애와 네 살이라는 텀만큼 누나를 존중했고 짓궂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아이는 참으로 침착했다. 바쁜 경옥을 대신해 수애가 동생들을 챙길 때 수애는 동생들, 특히 바로 아래인 그 동생 때문에 힘들어했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은 트라우마가 휘몰아치듯 누르고 압박해 왔다. 이야기가 사건이 될까 봐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꺼내지 못했었다. 그날 사건은 봄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듯 찾아왔고 그렇게 지나쳤다. 경옥에게도 수애에게도. 그대로 지나쳤다면 우리가 개입해야 할 사건이 아닌 줄  알았으리라.


후유증이 큰 사고였다.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질량의 트라우마가 남은 사고였다. 수애가 무척이나 들떠 있던 그날 동생도 신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를 입학하기 전 다녔던 유치원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있었다는 것도 귀가 후 너무나 신이 나서 들뜬, 유쾌한 걸음으로 다시 집을 나섰다는 것도 사고 이후에 알았다. 사라진 동생대신 허망한 불안에 가방을 껴안았고 그렇게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그 나이에 표현 가능한 무게가 다른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편지글을 담았고 마음을 다 내주었던 누나를 향한 동경과 위안까지 고스란히 담긴 엽서였다. 열한 살로 너무나 어렸던 수애였으나 엄마 경옥이 느껴야 할 죄책감을 자신이 적당히 덜어서 나눠 가졌었다.


이후 수애의 세상에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을 향한 연민이 유별나다고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어쩌면 치유받지 못한 그녀의 내면의 상처가 그녀를 끝끝내 잡고 있었고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았는지도 모른다.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사랑은 길을 잃어 눈과 귀가 없는 그림자의 형체만 있는 것이라 여기며 누르고 눌러왔다. 경옥은 수애를 볼 때마다 망설였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었다고 말하려고 결심했으나 그럴 때마다 거칠어지는 호흡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참고 미뤄왔다. 경옥은 그런 게 그게 수애게 얼마나 큰 짐으로 남아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계절을 풀어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여전했다

긴 세월에 조금씩 하나하나 풀고,

그렇게 풀리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하는 실수일까

보이고 드러나는 것이 불편했을까

두려웠을 뿐이다

온전히 자신을 지키는 방어기제로 남았다


실타래를 풀어낸 것이 아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가을날

마음을 다해 계절을 뽐내고 있을 때

불현듯 슬픔이 물밀듯이 찾아왔다


더 깊이, 더 강하게


눈부신 초록이 유난히 빛났고

바람은 공기를 어르고 달랬으며

그 시간 특별히 더 다정했다


곧 깨어질 것 같은

너무나 잔잔한 평온함에

차가운 두려움은

공간을 둘러싼 시간을 앞서 있었다


우연히 허수의 세상에

좌표를 만들었고

허수 아이를 떠나보낸다


언젠가 허수의 좌표를 찾아

아름다운 그 세상에 닿으리



덧,

연재 외의 글을 연결해서 앞으로 몇 편 더 글을 정리해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연재 글은 30화가 마지막이라 몇 편을 더 써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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