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너'를 읽는 일
정적이 내려앉은 시험 주간
수업이 끝난 교실엔 언제나 적막이 더 크게 느껴진다. 적막은 늘 같아 보이지만, 시험 기간의 적막은 조금 다르다. 평소보다 더 묵직하고, 더 눅진하고, 소리의 리듬이나 한 번의 호흡 만으로도 금세 깨질 것처럼 예민해진다. 아이들의 눈은 더 퀭하고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린다.
아이들은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문제집을 펼치고, 다시 초점 없이 책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 모든 움직임이, 소리 없는 어떤 외침처럼 느껴진다.
내 시선이 그 한숨을 되묻자,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그런데 노력하는 척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어른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하면 되는데 왜 점수가 안 나오냐고, 안 하면,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예의 아니냐고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나는 그 소리 없는 외침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 역시 ‘모르고 불안하지만 노력하는 척’ 해야 할 때가 여전히 많으니까. 그나마 그래야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시험 기간의 아이들은 유난히 진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초조함, 포기, 오기, 체념,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기대 같은 것들…
그 표정들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내가 이 교실에서 하는 일의 본질이 ‘수학을 가르치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나는 그저 이 변화무쌍한 감정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가끔은 아이들이 더 빠르고, 때로는 내가 조금 앞서가기도 한다.
아이들과의 걸음에서 경쟁하며 앞서가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복도, 익숙한 교실에서 서로의 속도를 따라가며 하루를 견딘다.
오늘도 그랬다. 한 학생의 태도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잠시, 자신을 돌아보라고, 잘하고 있는 건지 생각해 보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풀던 문제지를 찢듯 소리를 크게 내었고,
어떤 누군가는 “선생님, 그냥 모르겠어요”라며 하고픈 말을 무심히 던졌다. 그러면서 울컥 올라오는 깊고 무거운 감정을 꾹꾹 삼켰다.
그 아이들 곁에서 어떤 대답보다 더 오래 남는 질문을 꺼내본다.
“얘들아, 괜찮아? 오늘은 내가 갈게. 지금 너의 걸음은 어디쯤이야?”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눈빛에서, 마음을 감싼 어깨 기울기에서 그들의 생각과 진심이 흐릿하게나마 읽힌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교실에서는 정답보다 ‘지금의 너’를 먼저 읽고 아는 일이 더 소중하니까.
오늘도 정답 없는 하루를 살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자기 걸음의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 잠시,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었으니까.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정적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숨을 쉬고 내딛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시험이 끝난 학교도 있고, 아직 시험 줏 학교도 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나의 허전함에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구, 또 아이들을 규정 안에 묶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풀어 주고픈 느슨함이 양가적으로 깔려있다.
사실, k-중3은 존재만으로도 이미 소중한 아이들이다. 때로는, 느슨한 자유가 아이들을 더 크게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