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건 무엇일까
마침내 길고 길었던 시험 기간이 끝났다. 그 기간이 유독 긴 시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학교의 수학 시험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아이가 얼마나 체크를 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결정되는 시험이었다. 개념을 깊이 이해했는지보다, 운이 조금만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답답함이 한숨에 숨어 자신을 드러냈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 답답함을 오래 붙들었다. 아이들의 공부가 아니라, 내가 믿어온 가르침의 방향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해보다 오지선다형 답안의 체크에, 사고보다 운에 더 기대게 되었을까. 내가 꿈꿔왔던 삶과 교육 역시, 결국은 운에 의지해야 하는 걸까.
시험이 끝났는데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아쉬움과 회의가 뒤섞여, ‘가르친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서게 된다. 가르친다는 게 무엇인지 되묻는 과정에서 배움에 대한 정리 역시 흔들리게 된다.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먼저 지쳐 있었다. 밤 사이 열에 시달린 것처럼 몸은 젖어있었다. 직보를 하며 불안은 더 커졌다. 스물다섯 문항 중, 아이가 정말로 알고 푼 문제는 몇 개나 될까. 기껏해야... 과연 ‘아는 문제는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시험이 끝난 교실은 허전한 여운... 이상하게 조용하다. 떠들 줄 알던 아이들은 말을 아꼈고, 웃을 줄 알던 얼굴들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이미 끝난 시험지 대신 구겨진 메모지와 연필만 남았고,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 위를 떠돌고 있다. 누군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문제집을 덮은 채 한숨을 쉰다. 끝났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교실에 더 오래 머문다. 시험지 분석을 마친 나는 그 사이를 지나며 아이들의 표정을 하나씩 바라본다. 맞았는지 틀렸는지보다, 스스로 얼마나 실망시키고 있는지가 먼저 보인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시험은 끝났는데, 겁을 내는 이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채점조차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걸.
학창 시절 아이들은 이과정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 나는 언제까지 이 과정,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고 한걸음 디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