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라고! 열 셀 때까지 안 열면 유리문을 깨고 내가 안으로 들어간다. 우선 문을 열고 네가 한 대만 맞음 되잖아."
불투명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남동생과 아이는 아직 대적 중에 있다. 지금 대치중인 둘 사이의벽이 무너질 것도아니고 둘이서 당기고 있는 팽팽한 끈이 느슨해질 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불투명한 유리 안쪽에 있는 아이가 현관문을 순순히 열어줄리는더더욱 없다. 아이가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남동생의 남아 있는 자존심까지 건드리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이는 자신이 살고 있고 멀리서 바라본 풍경에는 옥상 가득 빨래가 널려있는 2층으로된다세대 주택 가운데서도 1층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그녀가 11살 때 부모님께서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구입한 다세대 주택이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후 지금 살고 있는 1층에는 현관이 있으며 거실이 넓어서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옥상이 있는 자신의 집을 사랑했었다. 하지만 이사 온 뒤로는 동생과 자주 현관의 불투명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이루고 있다. 지금 현재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남동생과 대적 중인 이 상황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만드는 것만이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귀했던 그녀의 가정에서는 남동생의 탄생은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친인척들, 엄마, 아빠 더불어 위의 두 누이까지... 그러면서도 그녀에겐 묘한 경쟁구도가 생기게 되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남동생이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축복과도 같은 탄생과는 좀 다른 양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군대에서 아주 오랫동안 생활해 오셨던 아빠는 가부장적인 성향이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 탓에 사내로 태어난 동생이 반응하는행동의 대상이 되었고 아빠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누이들 밑에 막내로 태어나다 보니가끔사내답지 못하고 여린 모습을 비출 때가 많았다.어쩌다 나약한 모습을 보인 날은아빠는 물 만난 고기처럼 군대에서 훈련병을 잡듯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동생의 삶도 그렇게 서서히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가끔 큰 소리로 씩씩하게 대답을 못한다고 반복해서 다시, 다시를 강하게 외치셨다. 또 말미엔 큰 소리로 ~다, ~까... 등을 붙이게 하셨고 그것도 자신감이 없으면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남동생을 향한 아이의 맘은 이중적이었다. 그럴 땐 사내아이로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축복이라고 주목받던 남동생에 대한 질투로 시원함이 이중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아빠가 가끔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남동생은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고 자신의 심경을 대신해서 말했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이 흑기사가 되어 동생을 지켜줘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 뒤로 눈빛에는 의지의 강한 불꽃이 타올랐으며 두 주먹은 뭔가 부숴버릴 만큼 불끈 쥐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상황에 대한 정당함을 인식하며 불안하게 바라본다. 그때부터 행함에 있어 갈등하게 되는 여러 상황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아빠의 대면이 모두에게 일관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둘째 딸인 아이에게는 많이도 너그럽고 여유로워 보인다. 장녀인 언니와 사내아이인 남동생에게는 그들 위치에서의 중책 탓인지 늘 긴장하게 하고 때론 무서운 눈초리로 집요하게 바라보곤 했다.아빠의 시선처리가 애매한 날이면 남동생은 불안해했다.
아빠에게서 아들이란 어떤 의미의 담고 있으며 관계를 하고 있는 걸까? 아빠에게 아이는 한낱 둘째 딸로 그녀가 맡고 있는 중책이 없어서 여유로움과 사랑이 실린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기대심리가 없으니 그저 편안하고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이중적 마음은 때로는 양심의 비중이 더 커지면서 선로를 이탈하기도 했지만 성장한 후에도 근원적인 것은 유지된다. 남동생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 이면에 성이 다른 그와 매사에 부딪히기도 했고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동시에 본능적으로 생겨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녀를 넘어서는 보다 더 센 '질투'라는 감정이 있었다.
아이는 남동생과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고 또 그렇게 청소년기를 지낸다. 세월의 시간들을 함께 겪고 나가며 아이는 가끔 생각한다. 동생은 나에게 어떤 사람일까? 가족이라는 믿음은 있는 걸까? 성장과정에서는 때론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만큼 한 인간으로의 객관적 위치에 있게 된다. 아이는 가끔 타자로서의 지극히 객관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에서의 관념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했었다.
아직도 팽팽한 아이와 동생, 둘 사이 관계에서 이제는 유리를 깨고 관념 속에 갇힌 자신을 꺼내 본다. 감춰진 관념을 깨트린 후 그 속에 숨어서 스스로 바라본다. 다시 꺼내고 비워낸다. 그렇게 사랑을 해 왔다.
유리를 깨고 갇힌 자신을 꺼낼 수 있었던 마음은 지금의 아이를 현재에 존재하게 했고 살아가게 했으며 그 힘은 다시 자신을 사랑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