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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08. 2022

관계, 그리고 거리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

관계를 나타내고 표현함, 표출됨으로 그들에게 닿아있는 '거리'에 대해 곱씹어 본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이 유해지고 저절로 수용되기도 다. 하지만, 관계는 점점 단출함을 추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꼬인 관계를 풀기보다는 포기하게 되었. 지향하는 삶의 목표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라고 말하며 잠시 위안의 마음을 갖는다. 두 물체 또는 장소 사이의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간격이나 길이를 나타내는 거리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 다의어이다.




우리 삶 긴 여정에서 좌충우돌하며 관계와 그 대상은 이미 내 삶의 가운데 침투해 있었다. 그러나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보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며 힘들어했다. 아픔이 함께하는 삶의 연장선의 과정에서 관계의 거리를 다음(원과 직선 사이의 관계)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원에 접하는 접선은 원의 중심에서 시작되는 반지름과 그 거리가 같다. 둘째, 원과 두 점에서 만나는 직선(원의 중심과 직선 사이의 거리)은 원의 반지름의 길이보다 짧다(가깝다). 셋째, 원과 만나지 않는 직선(원의 중심에서 직선)까지의 거리는 원의 반지름보다 길다(멀다).

1. d=r, 2. d <r, 3. d> r


번째(d=r) 경우는 우리가 가장 적절하게 잘하고 있다는 착각 '거리두기'이다. 삶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적당한 관계에서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일관되게 지켜주고 상호 간 윈윈이 되는 자리 지키기이다. 두 번째(d <r) 경우는 부모와 자식 간, 남녀의 관계로 예를 들면 집착이 점점 깊어져서 절대 끊어내기를 할 수 없는 관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d> r) 경우는 내 삶에서 대부분 잊힌 관계를 일반적 예로 들 수 있다. 만날 수 없을 만큼, 마주치지 않을 거리두기를 생각하면 된다.


탄생과 더불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관계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탄생과 동시에 관계는 시작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었고 진행되었던 두 가지와는 다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직면하고 내 의지가 닿는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관계에 있어서의 거리두기이다. 거리두기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탄생 이후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거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관계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두기가 시작된다. 다음으로 형제, 남매, 자매들 간... 밀접하고 밀착된 거리는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시작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거리는 나의 의지가 개입된 거라고 할 수 있. 우리는 좀 더 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여러 일의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관계에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관계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리 좁히기와는 조금은 다른 입장과 의미인 관계 회복은 물리적 거리와 정신적 입장에서의 거리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최근 2년간은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흔들리며 붕괴되었다. 물론 세계적으로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며 인류의 내면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종식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그 과정 위에 있고 혼란이 있었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아나가고 있다. 시간이 앞으로 얼마만큼 더 길어질지는 모른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견뎌 내야 할 시간이 물리적 거리의 시간일지 공간적, 심리적인 거리 일지는 무엇도 어느 누구알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위협이 다시 오기 전에 지금까지 견뎌냈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고 이제 곧 우리의 맘 속에서는 해방이라는 것을 부르게 되리라고 기대를 해본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부터 해방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어온 두려움과의 심리적 거리의 극한은 벌써 '0'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거리두기는 사회적 입장에서 집단적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개인적 위치에서 가족 간이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유지된다. 사람이 탄생하면서 삶을 살아갈 때의 관계의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그 가운데 거리두기를 자의로 해야 할 뿐이다.  누구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긋기와 그에 따른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때로는 복잡한 그물망이 스스로 힘이 되기고 하고 그 관계에서 존재의 힘까지 찾아낼 수 있다. 가끔은 단출한 관계 맺기가 나에게 힘이 되고 생각을 명료하게  주니 그게 바로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전자든 후자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과 선택 사항이라고 짚고 싶다.




과거에 비해 전국은 1일  생활권 안에 들어 있다. 최대 거리의 제주나 그곳보다는 가까운 부산... 최대 시간 24시간 안에 들어 있는 교통 시스템처럼 우리 사이의 관계... 를 들여다보며 관계망 속에서의 거리를 살펴본다. 오롯이 내 의지가 들어가서 더 좁혀지기도 더 멀어지기도 하는 관계에서의 거리는 바로 지금 너와 나 사이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삶이 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우리,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살아가는 것에서의 바쁘다는 핑계와 변명으로 적절하고 합리적으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안정된 거리를 만드는 최선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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