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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May 31. 2022

수박의 경계에서 '수'를 읽다

열심히 살았나요? 잘 살았나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든 외면하든 자연은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있다. 자연스러움으로 위장한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는 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다. 그녀는 항상 속해 있는 자연과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아직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흔쾌히 수용하고 인정했던 맘이 가끔 그녀를 답답하게 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맘과 머릿속을 온통 장악하고 있는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나가면서 반사적인 비워내기 이후 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자연스러운 삶이 원래 부조리했던 걸까? 애초에 불완전한 자연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조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조리하다고 애써 반항하는 자신의 태도가 부조리한 것인지도.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믿었던 그 시간으로 거슬러 가보면 누구나가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과연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모습에서 잘 살았다는 기준을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에 쫓기고 때론 밀리기도 했다. 허덕이며  분, 일 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맘은 이제겨우 주변을 돌아보게 했다.


어느 순간 주변을 살펴보니 자연이 보인다. 자연스러웠던 자연이  갑자기 부조리한 거처럼 느껴져서 불편했다.




어느 여름이 삶에 급히 끼어들 때쯤 커다란 수박 한 통이 선물로 곁에 굴러왔다. 수박은 과일과 채소의 경계에 있다. 과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인간에게 수박의 소속은 채소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수박을 과채류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수박의 시원함과 신선함을 충분히 누릴 때 그 소속이라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즐기는 수박의 신선함과 시원함은 과일과 야채 어느 쪽에 소속되어 있는지 결과가 아니다. 그것이 어느 '종'에 속했는지가 맛이나 순간의 기분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야채인지 과일인지는 내 삶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향해야 될지 선택의 경계에 있는 거처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뒤 과거를 돌아보면 만족도는 같다고 본다.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는 선택을 늘 그른 것으로, 만족스러운 경우는 상황이 항상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것에 집중 아니 집착하는 걸까? 삶은 우리에게 항상 선택을 맡기고 경계에서 갈등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양심은 마지막 나의 몫이다.


굴러들어  수박은 나에게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제철음식이었다. 수박의 이미지는 내게 반갑고 맛있다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수박을 썰어내는 일과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까지 아마도 책임에 의한 부담으로만 다가왔던 거 같다. 굴러온 수박은 둥글고 무겁고 크다. 굴러온 수박을 최선을 다해 다듬어서 맛있게 먹기로 단단히 마음을 잡는다. 무게가 9kg은 족히 되는데 둥글기까지. 모난 곳이 없는 수박을 좋아했다. 하지만 수박을 썰어 낼 때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은 수박의 모든 곳이 약점처럼 오히려  썰기 전 칼끝을 댈 때 방해가 된다. 목표를 정해 칼 끝이 한쪽으로 정해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소리를 내며 쩍 갈라지는 수박의 속성.


겨우 목표한 곳에 칼을 댄 후에는 우리의 삶이 보인다. 잘 익은 수박과 잘 익지 않은 수박의 차이, 겉보기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칼 끝을 대는 순간에 확실하게 드러난다. 정말 잘 익었는지 익지 않았는지... 껍질이 단단해도 잘 익은 수박은 껍질까지만 칼끝을 가져다 대면 스스로 방향을 잡으며 쪼개진다. 하지만 잘 익지 않은 수박은 칼끝을 껍질까지 힘겹게 가져가 대도 그것 이상으로 손목의 힘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잘 익은 수박은 쩍 갈라지는 순간에 빨간 속살을 드러내며 신선한 향까지 선물한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익은 삶, 설익은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응축되어온 삶의 태도나 앞으로의 태도로 마음이 더 힘들 수도 편안해질 수도 있으리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수박을 썰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에 푹 빠지니 삶이 보인다. 보기 좋게 잘 썰어진 수박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는 그것을 어떻게 맛있게 먹을 것이며 그 맛을 충분히 느끼면서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거면 삶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집중하는 순간에 삶이 보이고 그 안에 철학이 스르르 스며듦이 느껴진다.


수박의 경계에서 알게 된 깨달음을 곱씹어 본다. 경계에서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고 프레임을 깨고 다른 세상인 수박의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수박의 경계에서 알게 된 '수'이다. 이번에도 잘 읽어냈다.  잘 익은 수박은 비록 칼끝의 힘만으로도 가볍게 쪼개지지만 모양이 고르진 않다. 맛을 결정할 때 모양이 일정하게 고르며 잘 썰어진 수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내 삶은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삶에 집중하고 살아간다. 그 삶에 녹아난 철학이 있다.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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