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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May 22. 2022

그녀가 내게 안기며 흐느껴 울었다

익어간다는 말로 위장된 우리들의 상처




일상이 루틴이라는 늪에 빠져있지만 그 속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과 흔들리는 의지를 조금씩 더 단단히 다져가고 있었다. 수업을 끝내며 도서관 문이 닫히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자동적으로 차트를 뽑아 써내려 가듯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루틴 안에는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도 데이터에 있었고 지금까지의 습관과 생활방식의 전부일 수도 있는 계획, 대로만 움직여야 했다. 수업을 끝내고 몸은 자동적으로 완독 한 책을 에코백에 넣고 있었으며 부지런 외출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아이와 얘기를 나누며 걷던 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진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걸 계획하그 데이터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내가 속한 이 삶이야말로 위장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반문한다. 이 순간도 아이와 내가 보는 세상이 전혀 다르며 그 순간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에게 요즘 시선에 자주 들어오는 것과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에 대해 질문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는 얼마 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지 모르겠다고... 뭔가 질문에 벗어나며 대화의 방향을 돌린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요즘 친구들은 타인에 대해서나, 주변에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돌려서 얘기하는 걸까? 복잡한 생각으로 답답했는데 아이는 하늘을 한참 뚫어져라 본 후에  엄마랑 함께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참 좋다다. 감정이 안정을 찾았다나...


산책 후 집에 필요한 몇 가지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고민이 필요 없을 듯 보이는 여러 종류의 과자 앞에서 넘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스치듯 지나가며 힐끗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친 듯 보여 시선을 다시 과자봉지 쪽으로 돌렸다. 지나치는 듯했던 그 시선이 다시 되돌아와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녀였다. 그녀가 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끼고 신뢰했던 그녀였어. 착하고 야리야리한 바로 그녀였어. 크고 동그란 순수하고 맑은 눈을 가진 그녀였어. 그녀와의 인연은 벌써 9년이 되어 가는구나.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해서부터 쌓인 시간과 함께 그녀와의 시간도 시곗바늘이 지나간 그만큼이 아니라 함께한 질량과 부피만큼 꽤나 깊어졌지. 아이들 책 읽어주기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줬던 그녀와 난 바로 가까워졌지. 책과  아이라는 공통 관심 속에서 서로 신뢰하고 그 부분에 관해서만은 믿음이 있었지. 분류되어 있었던 우리들 가운데 그녀는 가장 어렸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고 열정으로 모임을 끌고 나갔지. 직진만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끔은 그녀의 열정이 막다른 길에 닿아 무너져 내릴까 봐 염려를 하게 되었. 적당한 이기심으로 살아가던 나는 그녀에게 맘을 전달했고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녀를 항상 응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하라는 부탁을 했지. 그렇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그녀의 열정으로 뭉쳐진 직진과 자칫 기회주의 자로 보이는 나의 서포트가 조화를 이루었던 걸까? 그녀 주변에는 거리를 두고는 있었지만 조력자들늘었어. 그 계기로 인해서 마치 정당한 거리두기에 성공한 거처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먼발치에서 격려와 사랑으로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 엄청난 일이 터져 버렸지.


지인들 가운데 물리적 나이가 가장 어린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 거야. 그전에 그녀의 남편에 대한 얘기는 전해 들어서 조금 알고 있었어.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머리도 좋고 하는 일 또한 타인들의 돈을 관리해주고 자산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지. 근데, 소위 그렇게 잘 나가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거야. 뇌졸중으로...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 갔을 때도 그녀는 남편이 곧 깨어나리라, 곧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지. 그녀의 남편이 쓰러졌고 수술을 하고 있고 곧 끝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어. 그녀는 잘 견뎌 내는 거처럼 단단하게 버티다 내게 안겨서 흐느껴 울었어. 깊은 호흡으로 답답함과 슬픔을 모두 뱉어내고 있었어. 그녀를 더 안아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잖아. 수술시간은 엄청나게 길었고 다행히도 수술 결과가 희망적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부분 안도하고 있었어. 모두가 안도감과 감사함을 맘에 담고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은 긴 시간을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채 보내고 있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그 사건은 잊히고 더 이상 큰 화젯거리가 아니었을 때쯤 그녀 남편이 깨어났지. 그때 다시 그녀는 내면에 감춰뒀던 열정을 토해내며 그것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연대ㅅ병원으로 옮겨 물리치료에 정성을 쏟을 때도 그랬고 다시 일산 쪽 병원으로 옮겼을 때도 그녀는 자신을 돌보지 못했어. 그렇게 지나간 지 벌써 6년이나 되어버렸네. 가끔 톡을 했지만 위로부터 하게 되는 게 서로 불편했을 거야.


 니체 사상을 삶의 모티브로 살고 있는 나는 아주 오래전 아이가 곁을 떠나갔을 때도 '신'에게 의지하지 않았지. 그녀는 달랐어. 그렇게 힘들고 심리적으로 나약할 때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 의지를 하며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거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봐 주는 건 ''뿐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차츰 신에게 의지하게 되었어. 그런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글썽이는 눈으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어.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언니 나 지흰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못 알아보네."라고 했지. "..."이라는 어설픈 대답과 함께 그녀를 다시 보니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눈이 시선에 들어왔어. 물론 지쳐있었고 힘들어 보였지만 다른 건 다 미루고 웃으며 "잘 지냈지? 지희야.." 인사를 건네니 그녀가 보고 싶었다며 껴안았어. 그리고 "언니 나 힘들었어. 뭐.. 삶이 원래 다 그런 거잖아요."라며 담담하게 뱉어냈지. 눈물이 났지만 온 힘을 다해 참았어. 순간 그녀는 보고 싶었다며 내게 안기며 흐느껴 울었지. 한참을 흐느껴 울더니 눈물을 훔쳐내고 나이를 조금씩 먹더니 주책이라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어. 오전 시간은 여유가 좀 있다는 그녀의 말에 커피를 마시자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흐느낌의 미련과 잔상이 남아있는 그 자리를 피해 나왔지. 집으로 가는 내내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옆에서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어. "누구시길래 엄마를 보자마자 안겨서 우는 거예요? 사실 조금 놀랐어요." 그렇게 이와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러 결의 감정을 정리했다.




그녀는 그날의 그 사건 이후 쭉 힘들었으며 지금도 과정 위에 있는 걸까? 가슴이 미어지고 아려왔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젊음 안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쓰러지기 전의 그 사람으로 돌려놓기는 힘이 들것이다. 애초에 불가능일지도. 하지만 그녀의 열정과 노력을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녀는 꺾인 거 같다. 깨달음이 생겼을 거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는 거. 냉정해 보이는 삶의 규칙은 자연의 질서에서 나오고 자연의 질서는 야속한 듯 모순된 부조리로 보이지만 가장 자연스럽다는 거 그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까? 과정은 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봄이 되면 그녀는 책 읽어주기에 좀 더 적극적 태도로 에너지를 여기저기 뿌려가며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목청껏 노래했었다. 그녀가 걸쳤던 샬랄라 거리는 봄옷은 바람에 흩날리며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쫒는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의 에너지와 그 시절 젊음의 기억의 잔상만이 남아있다. 봄바람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적당히 기분 좋은 경쾌한 발걸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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