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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May 20. 2022

너라는 아이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




"왜 이렇게 아침 일찍 등교한다는 건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아침부터 아이와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그녀는 어젯밤부터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감정을 다 끌어내어 쏟아붓고 싶었다. 딸아이의 멋대로 병이 중간고사 이후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장된 슈퍼에고의 자아로 둘러싸인 그녀였기에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배출할 수는 없었다. 심호흡을 통한 깊은 들숨 이후 잠을 청해 보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요 며칠 그녀를 괴롭혀 왔던 알레르기의 대표 증상인 홍조와 얼굴 부기로 잠을 잘 때 수면의 깊이나 질이 매우 불안정했다. 알레르기가 원인인지 몸이 몹시 피곤하다는 나름의 변명이 있었다. 불편한 감정에도 되도록이면 일을 키우지 않고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청소년들과 하는 독서토론 모임이 있는 날이다. 어젯밤 지금까지 미루다 결국 어제 책을 잡고 펼친 딸아이에게 책에 대해 잠시 얘기를 했다. 재미있고 공감 가는 이야기라 쉽게 읽힐 거라는 얘기를 남기고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고 집중해서 읽으라는 당부와 함께 아이와 그녀의 세상의 경계인 방문을 닫았다. 그녀는 딸과 자신의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속해있는 세상의 모두를 위해서.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딸은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분주하다. "토론방에 단상과 질문을 남기려고 일찍 일어났구나! 책은 다 읽었어?" "아니..." "그럼 지금 읽고 준비하려고?" "학교 가서 할게!" 아이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눌러왔던 화가 치밀었다. 집에서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데 학교 가서 수업 전까지 마무리를 한다는 게 엄마인 그녀와 부딪히지 않으려는 변명으로만 들렸다. 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즉흥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이번에도 참아야 할지 아님 뱉어내고 쏟아야 할지 짧은 시간 찰나의 갈등을 겪게 된다. 분노의 감정이 섞여 있어서인지 두통에 시달렸다.  인내가 붙잡아도 터져 나오는 이번 감정은 분노와 섞이면서 마구잡이로 혼합되어 거름망도 없이 표출되었다. 학교에 간다고 나가는 딸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나오는 대로 퍼부었다. 긍정, 부정 에너지를 가리지 않고 쏟아부었다. 사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선별하고 있었다. 수위도 여기까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고.



 

그녀에게 딸은 뭘까? 선물, 신이 내린 축복. 그렇게만 생각하고 아이를 귀히 생각해왔다. 그런데 왜 지금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까? 과거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녀는 과연 자신이 모범적인 학생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녀 역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청소년 시기를 보냈던 거 같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딸아이가 남기고 간 여운이 아프기만 하다. 그녀에게 긴장하라고 경고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바라본 딸은 제멋대로 병이 아닐까 염려하지만 그건 청소년기에 일반화된 우리의 모습이다. 또한, 딸이 걱정하는 그녀의 무기력병은 대한민국 부모님들이 겪는 보편화된 노화의 과정이고 모습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시선에 비친 상대의 모습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카톡 채팅방에 들어가 딸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남긴다. "더 이상 너를 믿고 지원을 못해주겠다. 최소한의 양심은 약속인데 그것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걸까?" 끝내 보내지 못한 메시지이지만.


아이는 학교에 일찍 가서 할 일이 있다. 같은 반 남학생들의 체육대회 예선 축구경기를 응원하러 간다고 일찍 서둘렀던 것이다. 그녀는 딸아이의 많은 일을 응원하고 지지, 지원해준다. 하지만 가끔은 흔들린다. 과연 지금의 자리, 위치에서 최선이며 옳은 것일까라는 딜레마에 빠져서 스스로 정한 믿음을 다시 돌아보곤 했었다. 청소년들과 함께 있는 토론방 밴드에 글이 올라왔다. 8시 20분이 되기 전에 글을 올린 사람은 딸아이였다. "갑자기 약속을 지켰구나!"라는 맘은 혼란스럽게 그녀를 꾸짖기도 하고 좀 전의 상황에서 그녀 자신의 태도가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딸아이는 진지하다. 진지함을 최선을 다해서 약속을 이행함으로 표현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엄마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는 듯 바로 글을 올렸고 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할 말이 없게끔 만들었다. 사실 연락해서 과제 얘기도 하고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멈춰야 함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딸아이가 아주 어릴 때였다. 그녀의 몸이 많이 힘들고 지쳐 있을 때쯤 시어머님께서 당시 1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인천으로 가셨다. 어머님께서는 몸이 약한 며느리를 위한 최선의 배려를 하셨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던 그녀에게 그만 끊을 것을 권하셨다. 이젠 모유에 더 이상 영양가도 없을 뿐 아니라 많이 자란 큰 아기가 모유를 더 먹는다면 엄마 몸이 남아있지 않겠다면서. 긴 시간의 모유수유는 아기와 엄마 둘 사이의 애착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 또한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낸 적이 없었기에 아기와 헤어지면서 그녀는 갑자기 힘이 들었고 주변까지 우울감이 엄습해 왔다. 더군다나 젖몸살이 원인인지 몸살이 난 듯 온몸이 아팠다. 그렇게 며칠을 아기 생각만 하면서 지냈다. 몸을 좀 추스르고 맘도 정비하자 아이가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조부모와 함께 돌아온 아기는 그녀와 며칠 만의 상봉을 했고 그때 아기는 뭔지 모를 책임감과 신뢰까지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를 바라보던 아기의 눈빛은 낯 섬, 그리고 사랑과 어색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연민과 사랑이 함께했다. 덧붙여 이젠 뭔가를 설명해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그녀를 바라보자 아기는 어색함과 함께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천천히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쪽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아기는 며칠의 설움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가슴 깊이 들어가 엄마와의 교감을 하며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녀가 아이에게 얘기할 차례다. 차분히, 차근차근 이제  모유수유를 할 수 없음을. 엄마 몸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며 아이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아이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깔끔하고 단호하게 손으로 그녀의 가슴 쪽을 살짝 치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악을 쓰며 울면서 매달리면 맘 약해지고 그러면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아이는 뒤끝 없이 더 이상의 요구나 응석을 하지 않았다. 내심 아기의 그런 태도가 서운하기까지 했다. 

신기한 건 아이가 그녀의 맘 전달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그날을 시작으로 더 이상 모유수유에 매달릴 필요도 더 이상 요구도 없었다. 그때부터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간식으로는 생우유를 마셨고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기특하기도 하고 아기의 태도가 매우 특별하고 신기했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맘을 충분히 이해하고 설득된 거처럼 눈을 깜박이고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았던 행동은 또 한 번 있었다. 첫 돌도 지나지 않았던 때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몸이 혹사되어서 인지 어느 시점부터 허리가 안 좋아지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 그녀는 아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업어주게 됨 엄마가 일어나기 힘들 거라고 전했다. 앞으로 안아주거나 업어주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다시 힘주어 전했다. 아기는 업어달라고 잠시 울고 보채더니 그 얘기를 나눈 후 금세 태도가 변했다. 아기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엄마와의 행복을 중심으로 둘 사이 관계를 지속하려는 거처럼. 모든 걸 체념하고 마치 그건 이해에서 시작된 거처럼.




아이는 유년기에도 그녀를 놀라게 하는 일이 았다. 그 놀라움은 아이의 공감능력이나 이해가 특별하다고 생각할 만큼 빠른 포기나 도전을 했고 떼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큰 어른처럼 성장했다. 아이의 태도는 사춘기를 겪어 나가며 자기중심적으로 점차 변했지만 상대의 맘을 읽어주는 공감능력은 여전히 특별하다. 그런 아이가 요즘 자주 그녀를 울린다. 아이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나치게 편안히 뱉어내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다. 가끔은 그것의 끝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기도 다.


너라는 아이는 정말... 그녀는 생각한다.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딸아이에게 흔들리는 자신이 불편하면서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라는 아이를 정말...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 어떤 모습을 하거나 보여도 아이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진심이다. 너라는 아이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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