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임님, 건배사 한번 부탁해요!"

by 말글디자이너

2019년 봄, 어느 저녁 회식 자리였습니다.


새 직장, 새로운 사람들, 낯선 분위기 속에서 긴장이 되고 모든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온 한마디.

"장 주임님, 건배사 한번 부탁해요!"


당황했습니다. 모두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부서장도, 동료들도.


그 순간, 정말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방송작가로 7년을 일했습니다. EBS에서 방송 대본을 쓰고, 출연자 섭외를 하고, 주제곡 작사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5년 가까이 지방도시 시청에서 스피치라이터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말을 다루는 일을 12년이나 해온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의 눈이 내 몸에서 떠나지 않는 그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12년의 경험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언가 멋있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불안감이 끝내 저를 침묵하게 했습니다.


결국 저도 그날 회식자리에 있던 다른 동료들처럼 몰래 휴대폰을 꺼내 '건배사'를 검색했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말을 다루는 사람인데, 정작 내 말은 왜 이렇게 서툴까?'


그 답을 찾기까지 꽤 오래 걸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또 지나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말 같은 글은 써봤어도 '진짜 내 말'은 써본 적이 없구나...'

역설이었습니다. 말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일상의 내 말'을 써본 적이 없었다니요.


MC들을 위한 대본은 썼습니다. 언론사 기자가 볼 보도자료도 썼습니다. 캠페인 카피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역할 안의 말'이었습니다. 시청자를 위한 말, 기자가 읽을 말, 주민들이 원하는 말.


그날의 건배사도 그랬을 겁니다. 건배사라는 '형식'에 맞춰 멋있는 말을 하려다 보니 정작 필요한 순간 '내 말'은 없었던 거죠.


이후로 저는 제 말을 먼저 연습했습니다. 아무리 짧은 미팅 인사도, 잠시의 전화 통화도, 진지한 논의를 위한 회의 대화도. 중요한 말들을 제 휴대폰 메모장에 남겼습니다.

‘이 말이 적절한가?’

‘이 표현이 이 사람에게 맞나?’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말을 다듬었습니다.

결과는 달랐습니다. 첫인사도 달라졌습니다. 회의 때 갑자기 질문이 들어와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제로 이미 생각을 정리해 놓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어려운 피드백도, 미안한 말도 먼저 써보니 더 구체적이고 따뜻해졌습니다.

더 신기한 건, 사람들이 제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순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그 표현이 정말 와닿던데요."

"장 주임은 정말 꼭 필요한 말을 잘하더라고요."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말센스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말센스에 담긴 제 진심과 고민은 제 태도가 되어 상대방에게 닿았습니다.


어느덧 말과 글의 현장에 머문 지도 19년입니다. 수많은 경험으로 제가 터득한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말은 기술이 아닙니다. 태도의 기록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문장도, 진심이 없으면 형식이 됩니다. 반대로 조금 어색한 말이라도 태도가 진심이면, 좋은 말이 됩니다. 그 진심은 다듬어 가는 말센스로 깊어집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한 말. 상대를 생각하며 고르고 고른 말. 그런 말들이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습니다.


이제 저는 제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말과 글로 관계를 디자인하는 사람, 말글디자이너 장은희’

디자이너가 공간이나 옷, 상품을 설계하듯 저는 말로 관계를 설계합니다. 어떤 말을, 언제, 어떻게 건네면 관계가 따뜻해지는지. 그 감각을 말센스라고 부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일터에서 말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로 오해가 쌓여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가끔은 일부러 업무 전화도 피합니다. 말로 하는 대화보다 점점 문자로 하는 대화가 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로 오해가 생기거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말센스를 다듬으며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그런 분들을 위해 나누고 싶습니다.


첫인사가 어색하고, 회의에서 긴장되고, 보고 때 막히고, 감사나 피드백, 이별인사를 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 말이죠.

저는 경험했습니다. 말센스는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다듬으며 쌓이는 힘입니다.

만약 최근에, 혹은 지금도, 직장에서 말 때문에 힘든 경험을 하고 계신가요? 말할 생각만 하면 어색하고, 불안하고...


그런 경험이 분명 당신을 성장으로 이끌 겁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당신의 말센스가 자랄 수 있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 달, 저는 말로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말센스가 자라는 여정을 안내하려 합니다. 매일 만나는 말의 순간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을 수 있을지 제 경험을 나눠드리겠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무심코 건넨 말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당신의 일을 평가하고, 당신의 내일을 결정합니다.

내일은 제 말센스의 시작점이 된 '건배사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 덕분에 배우게 된 가장 따뜻한 말의 공식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8시, 당신의 말센스가 일센스가 되는 순간까지.


말글디자이너 장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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