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배사 5원칙

by 말글디자이너

# 회식 자리. 누군가 갑자기 "○○님, 건배사 한번 해주시죠!"라고 말한다. 머릿속이 잠시 하얘진다. 눈이 커진 선배, 입꼬리가 굳은 후배그리고 속으로 '제발 나만 아니기를…' 바라는 동료들.


혹시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나요?


전 있습니다. 그것도 말을 다루는 사람인데 말이죠.


이런 당황스러움 때문에 많은 경우 건배사를 검색합니다. 그런데 복사한 건배사는 웃길 수는 있어도,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에는 이미 누군가가 써본 문장들이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 "마돈나(마시고 돈 내고 나가자)" 같은 표현은 이제 너무 피로합니다. 때로는 선정적 농담으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이렇게 뻔한 표현을 쓰는 건배사는 무엇을 남길까요?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는 건배사 vs 잊히는 건배사


관공서 조직문화와 홍보업무 특수성이 합쳐져 유독 많은 건배사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식, 저녁 미팅, 행사장... 어디서나 건배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건배사는 잊혔습니다. 그리고 어떤 건배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십 번의 건배사를 들으며 알게 됐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배사들이 공통으로 가진 원칙이 있다는 것을요. 아래 5가지입니다.


첫째, 검색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문장을 피했고, 자신만의 표현을 찾았습니다.


둘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기만의 한 순간을 꺼냈습니다.


셋째, 명언이나 책 속 구절, 영화 대사 등을 활용했습니다.

원문의 의미는 충분히 살리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넣었습니다.


넷째, 어려운 시기에는 격려를 담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말이었지만, 함께 한 이들에게 힘을 북돋우는 말을 전했습니다.


다섯째, 가벼운 자리의 건배사는 재치였습니다.

분위기를 푸는 짧은 웃음, 그러나 가볍지 않은 센스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유머의 안전지대'


건배사에서 유머는 양날의 검입니다. 잘 쓰면 자리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잘못 쓰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듭니다.


심리학자 애런스와 맥기는 유머가 조직 내 긴장을 완화하는 '사회적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이 바탕이 아닌 유머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유머는 정반대의 효과를 만듭니다.


진심이 바탕이 된 유머만이 사람들의 방어를 풀고, 한 번의 웃음만으로도 긴장을 풀 수 있습니다.


좋은 건배사는 이 안전지대를 지킵니다. 웃음은 있지만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가볍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그것이 건배사에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준비하면 달라진다!


어느 해 연말 회식 자리에서 5가지 원칙을 담아 저만의 건배사를 준비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 〈오르막길〉을 활용해서 말이죠.


"올 한 해, 제겐 오르막길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듯 숨이 차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막이 있다는 건, 그 끝에 '정상'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내년에는 우리 모두 그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제가 '○○년!' 하면, 다 같이 '야호!' 외쳐주세요."


웃음과 박수가 울렸습니다.


내 하루를 돌아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리고, 그것을 내 말로 정리한 준비였습니다.


진심이 담긴 한 문장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립니다. 그 건배사는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모두의 마음을 잇는 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말센스입니다. 준비하면 달라집니다.



뻔하지 않되, 가볍지 않게


당신의 건배사 경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누군가의 건배사를 듣고 '아, 저건 내가 배워야 할 기술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이제 곧 연말입니다. 수많은 회식자리가 생기고 다양한 건배사가 오르겠죠.


이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이 말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공유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도 이번 연말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를 해야 한다면, 준비해 보세요.


당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좋아하는 노래나 책 속 구절을 떠올리고, 그것을 당신의 말로 정리해 보세요.


누군가의 오늘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준비된 말이.


"건배사에 당신을 담으세요. 뻔하지 않되, 가볍지 않게'




다음 이야기는 "관계의 문을 여는 첫인사"입니다.

내일 아침, 당신의 말이 관계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배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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