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용기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아니 또 다른 시작
안 보셔도 괜찮은 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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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쓸 때 그 시작이 어디인가 찾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주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일들이 모이고 모여 팡- 터졌을 때가 그렇다. 무언가 결실을 이루고나면 시작을 고를 수가 있는데, 결실로 이어지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시작도 못 한 이야기들이 쌓이다가 휘발된다. 이번에 내가 할 이야기는 흐리멍텅하고, 확실한 건 없지만 내가 방향을 잡아가는 이야기.
계기 중 하나는 히든노트였다.
히든노트란 무엇인가. 라잇요라이프에서 판매하는 노트 이름이다. 올해 초 반짝임 수집을 통해 만나게 된 반짝임 수집가 주디님이 히든노트를 쓰는 걸 보고 나도 사고 싶어졌다. 그런데 저렴한 노트를 쓰는 내게 히든노트는 비쌌다. 예쁘고 비싼 노트를 살 수록 의미 있는 걸 기록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히든노트도 마음속 장바구니에 담겼다. 그 장바구니에 담기면 구매로 이어지는 건 극히 드물다. 히든노트 역시 몇 달을 장바구니에 머물렀다.
두 번째 계기는 라이팅룸이었다.
지인들이 라이팅룸에 다녀오는 걸 볼 때마다 부러웠다. 고요하게 기록에 몰두하는 시간.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가지러 가고 싶었는데 인천 사는 내게 중구는 많이 멀다. 그런데 또 너무 머냐고 하면 그렇진 않다. 가는데는 2시간씩 걸리지만, 중구에 갈 일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을 방문할 때마다, 니트컴퍼니에 방문할 때마다 지도의 별이 라이팅룸을 가리켰다. 라이팅룸에 방문하면 라잇요라이프의 제품들이 있다고 들었다.
세 번째 계기는 니트컴퍼니 속터뷰였다.
그간 라이팅룸을 매주 지도에서만 눈으로 담았는데, 매주 일정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서 집에 오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고요를 즐기기 위해 라이팅룸에 가서 겸사겸사 히든노트도 구경해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끝나면 고요는 무슨 그냥 집에 가서 쉴 상태였을 때가 많았다. 혹은 일이 밀려있거나. 그러니 그 별이 마음속 짐이 되고야 말았던 시점, 니트컴퍼니에서 속터뷰가 있었다. 팀장즈와 그룹으로 속마음 인터뷰하는 시간이었는데, 지니님과 상담하며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날은 일정도 빠르게 끝났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아쉽고 마음도 고요하던 그때서야 별이 반짝였다.
네 번째 계기는 운명처럼.
그래서 곧장 라이팅룸으로 향했는데 영업시간 전이었다. 겸사겸사 인근을 걸어다녔다. 점심시간 직후라 직장인들이 서성서성 배회하거나, 커피를 사러 다녀오고 있었다. 나는 타지 사람인 걸 티 내듯 건물들을 구경하고, 골목길을 구경하며 걸어다녔다. 땀을 흘리며 매장에 방문했고, 히든노트가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노란색 히든노트 샘플이 눈에 띄었다. 다른 색도 무척 예뻤지만, 꼭 노란색을 사고 싶었다.
사주에 흙이 없다 그랬다. 다른 게 균형적인데 흙은 하나도 없단다. 그 해결책으로 노란색이 좋다고 하더라. 얼마 전 노란색 맨투맨을 샀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노란색을 좋아했나? 본능적으로 끌렸던 거야.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히든노트를 산다면 노란색을 사야지 하고 구경했는데, 노란색 재고가 안 보였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 점원분께 여쭈었더니 재고가 없다고 하신다. 온라인에서는 구매 가능하다고.. 근데 그럼 나도 그냥 온라인에서 사면되는데 아쉬웠다. 내 손으로 만진 제품을 사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에 서성서성이며 고민하자 점원분이 샘플로 전시된 노트도 괜찮냐 여쭈셨다. 대신 할인해 주시겠다고.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와! 너무 좋아요!"
속마음이 아니었다. 겉으로도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점원분이 예쁘게 히든노트를 포장해 주시는 걸 보며 점점 마음이 설레어갔다. 이 히든노트에 뭘 담을지 모르겠지만, 그 모르겠는 기분마저 기분 좋았다.
다섯 번째 계기, 히든카드.
바로 포장을 열어봐도 되는데, 집에 가서 조심히 열어보고 싶었다. 포장된 히든노트를 들고 2시간을 내리 달렸다. 아니, 달린 건 지하철과 버스고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 집에 도착했다. 그런 와중에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포장지부터 벗겼다. 포장지를 벗겨 커버를 씌우고 보니 히든카드가 있었다. 누가 봐도 복권처럼 긁는 칸이 있었다.
콩닥콩닥, 무슨 말이 나올까?
그때만 해도 명언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다. 긁을만한 것 없나? 오랜만에 저금통을 열었다. 빼곡한 동전들 중 손에 잡히는 것만 후다닥 잡아 들고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카드를 긁었다. 그런데 용기가 나왔다.
"헤엑."
진짜 거짓말 않고 헤엑하고 소리를 뱉었다. 용기, 용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마음이 벅차서 이 순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왜 벅찬지도 모르는 채 노트를 찍고, 카드를 찍고, 카드를 넣어 또 찍었다. 왜 찍고 싶은지 모르니까 일단 이것저것 찍었다. 참고로 나는 사진 찍는 취미가 없다. 모임을 열어놓고 모임 사진도 안 찍어서 모임원이 보내주는 사진으로 후기를 쓸 정도다. 그런데 사진부터 찍었다.
그리고 마음 먹었다. 이 노트엔 용기를 담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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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출근할 용기 vs 퇴사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