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의 용기노트

1. 출근할 용기 vs 퇴사할 용기

by 말복

0화 : https://brunch.co.kr/@malbok/114


예쁘고 비싼 노트라 무얼 써야 할 지도 막연한 채로 구매했었다. 그런데 그 노트에서 '용기카드'가 나왔다. 나는 용기와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하고, 결단을 내린 후에도 말하지 못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그런 내가 대책 없이 '용기노트'라 이름 붙이자 거짓말처럼 용기가 생겼다.


뭐든 할거야. 뭐든 도전하고 용기노트에 쓸 거야.


그리고 용기노트를 산 지 4일 후부터 별 거 아닌 용기들부터 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쓰인 용기는 <독서모임 열기>였다. 발행한 콘텐츠에 반응이 없어서 고민되던 순간 용기노트가 떠올랐다. 반응이 없어도 모임은 계속 열어보기로 한 다짐과 함께. 용기내어 독서모임을 또 열었다. 결과는? 11월 독서모임은 모집 미달로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용기를 냈다는 기록이 남았다.


그 후로도 남들 보기엔 별 거 아닌 용기들이 계속 쓰여갔다. 테스트 릴스 전체 공유하기, 새 시리즈 구상하기, 만화 공유하기, 니트 일정 취소하기 등! 용기들에는 각각의 이유들을 꼭 덧붙였다. 예로 니트 출근 취소하기 밑으로는 "그래도 될까? 하지만 내 건강 내가 지켜야 하니까..!"가 쓰여있다. 일정을 취소할 때마다 사람들의 실망이 두려워 꾸역꾸역 다녀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용기를 내야 한다.


KakaoTalk_Photo_2025-11-10-19-25-07 003.jpeg 용기노트 중

쓰기의 힘은 대단하다. 쓰는 것 자체로 깨달음을 줄 때가 있다. 10월 27일에 담은 용기 중에 출근하기가 있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였다. 이게 뭐길래 내게 용기까지 필요한 걸까?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는 남들 보기엔 꿀알바였다. 집에서 40분 거리의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주 4일 알바. 심지어 출근하면 거의 나 혼자에 몇 개월 이후로는 재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있었다. 창작을 지속하려면 돈이 필요하면서 시간도 필요했고, 그 일이 딱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왜 용기까지 필요했을까?


나도 몰랐다. 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용기내어 출근해야 한다는 걸 직접 쓰고, 그 글씨를 눈으로 마주하자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힘들 때마다 최대한 버티자고만 생각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왜 힘든지보다 버텨야 하는 이유들부터 마음에 새겼다. 다음 용기는 고민과 마주하기였다.


이틀 후 용기노트에 '출근할 용기 vs 퇴사할 용기'를 썼다. 나는 힘듦을 외면하고 버티자고만 생각해왔다. 회피였다. 퇴사로부터 회피했고, 생각으로부터 회피했다.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버티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러나 출근함으로 인해 괴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생각을 회피할수록 괴로운 시간만 길어질 뿐이었다. 내가 회피하고 있는 고민은 출근인가 퇴사인가.


역시 쓰기는 대단하다. 나는 그 모든 고민을 씀으로 해결했다. 쓰고 나니 내가 회피하고 있는 건 출근도, 퇴사도 아닌 갈등상황이었다. 출근함으로 인해 지속되는 갈등상황이 힘들었다. 아르바이트의 근무조건은 꿀이었을지 몰라도, 업무방식이 맞지 않아 4시간 동안 일하고 나면 다음 날 오전까지 두통에 시달렸다. 그럼 퇴사는 어떤가? 퇴사하면 일시적인 갈등상황이 발생할거란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다.


당연히 일시적인 갈등상황이 낫다. 쓰기 전까진 혼자만 생각하느라 이상한 줄 몰랐다. 쓰고 나서야 내가 퇴사할 때 벌어지는 일시적 갈등상황이 두려워 지속적인 갈등상황인 출근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앞으로 퇴사한다고 어떻게 얘기하지? 고민할 틈도 없었다. 용기노트가 내 가방 안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힘이 났으니까. 빠르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그 후로 잡코리아와 알바천국, 당근알바, 사람인 등 구인구직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다. 지역을 바꿔보고, 근무조건을 바꿔보고, 새로고침을 몇 번이고 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다양한 일자리가 넘쳐났다. 그러나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다른 용기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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