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어떤 떡볶이를 좋아하냐고 묻지 마세요. 다 좋아하니까요.

by 말복

떡볶이를 주문할 때면 늘 체크하는 옵션이 있습니다. 떡 적게, 어묵 많이 옵션이요.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떡은 많이 먹기 힘들달까요? 그렇다 보니 가끔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역시 떡볶이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꽤 유명한 매운 떡볶이집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상권도 제법 괜찮아서 손님도 참 많았는데요. 그만큼이나 손님들의 옵션도 다양했어요. 떡을 빼주세요. 떡은 5개만 주세요. 떡 빼고 당면 추가할게요. 떡은 반만 주세요. 떡 많이 주세요. 저는 그 요청 사항들이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요청 사항들을 보고 난 후에야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떡볶이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레시피가 무한하더라고요. 떡이 적어도 떡볶이인거죠. 자기 마음대로 커스텀할 수 있다는 점. 그게 떡볶이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어렸을 때 떡볶이를 싫어했던 분이 계실까요?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제 또래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아요. 하굣길에 컵 떡볶이 하나 주문해서 들고 가는 그 설렘이요. 저는 거의 매일 먹었어요. 어느 날은 튀김을 한 개 추가해서, 어느 날은 두 개 추가해서, 어느 날은 그냥 그대로요. 돈이 조금 더 있을 땐 슬러시와 함께 주문해서 먹었고, 돈이 부족할 땐 작은 컵 떡볶이를 먹으며 집에 갔어요. 회수권 아껴서 떡볶이를 사먹고 집까지는 걸어갔죠.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매일요! 20대가 되고서는 떡볶이를 서서히 끊는 친구들이 많았는데요. 그도 그럴 게 퇴근길에는 집에 가기도 바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스물하나? 스물둘? 그쯤에 다시 먹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휴학하고 화장품 가게에서 알바하던 때였어요. 지하철역 안에 있어서 이래저래 불편했는데 그 대신 점심시간이 넉넉하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죠. 일하는 곳 근처에는 작은 포장마차가 많았는데요. 소주에 우동을 먹는 그런 포장마차는 아니고, 떡볶이집이 많았어요. 역을 빙 둘러싸고 떡볶이와 튀김 2개, 순대 몇 알 정도를 세트로 파는 가게들이 다섯 개는 족히 넘었던 것 같아요.


돈 없는 가난한 휴학생이던 저는 점심시간이면 떡볶이를 먹으러 갔고, 때로는 퇴근길에 떡볶이를 포장해 갔어요. 그 전엔 매일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거기에 조금 더 보태면 떡볶이와 튀김 2개를 살 수 있었거든요. 저는 양이 작아서 그렇게 1인분을 포장해 가면 점심과 저녁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 대부분의 끼니를 떡볶이를 먹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쯤이면 질릴 만도 하지 않나요? 그런데 몇 년 후엔 떡볶이집에서 일을 하게 된거죠. 매일 떡볶이 냄새를 맡고, 맛보고, 포장해 가서 또 먹었어요. 그뿐이게요? 가게에서 떡볶이를 사면 공짜로 주셨는데(직원 복지였던 셈이죠. 그때만 해도 사장님은 제가 그렇게 많이 먹을 거라 생각 못 하셨겠죠?) 다른 가게에서도 사 먹었어요. 그때쯤엔 비싼 떡볶이집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매일 다른 떡볶이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늘 물어봐요. 쌀떡 파냐, 밀떡 파냐부터 시작해서 매운 거 좋아하냐 달달한 걸 좋아하냐는 물론이고, 어느 집 떡볶이를 제일 좋아하냐고요. 떡볶이를 정! 말 좋아하는 저에게 그건 정! 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제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한한 조합이라고 했잖아요? 가게마다 맛도 다르고, 시그니처 메뉴도 다르고, 곁들여 먹으면 좋은 사이드 메뉴도 다 달라요! 그러니 늘 먹고 싶은 떡볶이가 다를 수 밖에요.


어느 날은 꾸덕한 쌀 떡볶이가 먹고 싶고요, 또 어느 날은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국물 떡볶이가 좋아요. 칼칼한 떡볶이는 밥이랑 같이 먹으면 반찬 같고, 고추장 베이스의 떡볶이는 순대를 푹 찍어 먹어줘야죠. 즉석 떡볶이집은 또 가게마다 시그니처 튀김이 다 달라요. 깻잎 튀김이나 상추 튀김, 계란 튀김 등, 또 어떤 곳은 무침 만두를 추천하기도 하죠. 사리까지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 할게요.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떡볶이의 세계에서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저는 매일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외식할 때 아니면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배부른 제가 살이 찐 이유는 모두 떡볶이예요. 떡볶이만 먹으면 이성을 잃고 원래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이 먹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샌드위치나 김밥은 반 개도 겨우 먹는데, 좋아하는 건 2인분도 거뜬한 사람. 그게 저예요.


어느 날은 친구가 나중에 떡볶이집 차려도 되겠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더라고요. 저도 웃으면서 답했죠.


"아니, 내 가게는 나 때문에 망하고 말 거야."


그렇잖아요. 사업은 저 혼자만 먹고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직원들까지 같이 먹여 살릴 수 있어야죠! 직원들은 저 때문에 매일 떡볶이를 끼니로 때워야 할 텐데 무슨 죄예요. 거기다가 다른 가게 떡볶이를 시키면 괜히 경쟁업체니 뭐니, 눈치 보일 것 같아요. 맞아요, 저 N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어 답했어요.


"그보단 나는 돈 많이 벌어서 1:1 PT 끊어놓고 매일 떡볶이 먹는 사람이 될 거야."



인스타그램에서는 만화가 함께 연재됩니다.

이전 02화2024년 12월 6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