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by 말복



짝꿍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게 있어요. 모든 사람이 함께 밥 먹는 시간을 중요시 여기진 않는다면서요? 동거 초에는 이 차이 때문에 작지 않은 갈등이 있었어요. 기껏 차려놓고 "먼저 먹어." 하고 일을 한다거나, 밥을 먹다 말고 빨래를 널러 간다거나.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오랜 기간 싸우고 대화하며 깨달았어요.


아, 나만 '도란도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처음엔 충격이었어요. 같이 앉아서 밥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요? 지금 저한테 공감하는 분들 분명히 계실걸요? 하지만 짝꿍 입장을 들어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더라고요. 잘 들어보세요.




밥 대신 영양제 한 알로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제 짝꿍이 딱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에게 식사는 귀찮은 것이고, 식사 시간은 짧을수록 좋답니다. 청소하거나 일을 하는 것처럼 한 번에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잘 와닿지는 않지만 그런 건가 보더라고요.


저를 만나기 전엔 삼각김밥이나 라면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했고요. 어머님이 해주시는 제육볶음 하나로 하루 세 끼뿐 아니라 몇 날 며칠을 먹는 편이더라고요. 점심으로 제육볶음 먹었으면 저녁엔 다른 걸 먹고, 저녁에 제육볶음을 먹어야 한다면 반찬 정도로 하고 주메뉴는 또 바꾸는 저와는 철저히 다른 사람인 거죠.


그래도 여전히 괘씸하신 분 계실까요? "그래도 그렇지. 식사 시간이 뭐 얼마나 길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들려드릴 이야기는 더 눈을 크게 뜨고 들어주세요. 사실 이 이야기의 행복은 이다음에 있거든요.




늦은 시간이 되면 우리는 거실에 앉아 티비를 켜요. 한 사람은 드라마를 고르고, 한 사람은 야식을 준비해요. 점심과 저녁은 늘 그가 빠르게(!) 차려주기 때문에, 야식은 대체로 제가 차리는 편이에요. 보통 드라마는 20분 정도면 한 편이 끝나는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드라마를 골라요.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같이 앉아 한 입 먹고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재생을 눌러요. 같이 식사하며 드라마를 보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20분 정도 천천히 먹다 보면 드라마가 끝나는데요. 식탁은 바로 치우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간단한 다과를 즐겨요. 귤을 까먹기도 하고, 요거트를 먹기도 하고요. 고양이도 쓰다듬으면서 함께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요.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면 함께 양치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요. 고양이는 그제야 까작 까작 밥을 먹고, 때로는 골골송을 부르며 저희 둘 사이에 파고들어요. 그리고 또 이야기가 한참을 이어져요. 대부분 짝꿍이 먼저 잠들곤 하는데, 저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느릿느릿 말하다 점점 숨소리가 더 커지고, 제가 "잘 자." 하고 속삭여주면 "어어.. 미안해…. 잘 자…." 하고 잠결에라도 꼭 대답해 주거든요. 그러면 저도 미소 지으며 잠들어요.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아침은 조금 늦게 시작되곤 해요. 프리랜서라 출근 시간이 자유롭다고는 해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아침의 업무 효율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사랑스러운 시간이에요.




저는 1분 1초가 빠듯한 그에게 점심과 저녁 시간은 효율을 위해 내어주었고요. 대신 그는 하루의 마무리를 꼭 저를 위해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주어요.


사랑의 언어가 달랐던 거예요. 돌이켜보면 제 짝꿍은 아무리 바빠도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저녁 반찬까지 미리 차려두고 사무실로 가거든요. 밥을 대충 차려주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 바빠 보여서 오늘은 라면 끓여 먹을까? 해도 한사코 거절해요. 최대한 빠르게 차려줄 테니 할 일 하며 기다리라 하고선 분주히 움직여요. 참나, 이럴 거면 제가 해도 되는데 저는 할 일을 하래요. 그는 자기 시간만 아끼는 게 아니라 제 시간도 아껴줘요.


그걸 이해하고 나니까 더 이상 모든 부분에서 '도란도란'을 요구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제 짝꿍은 자기 방식대로 제게 사랑을 주고 있었고, 또 제게 중요한 도란도란 시간까지 하루에 한 번은 내어주고 있어요.


무엇보다 식사 시간도, 도란도란 시간도 중요하지 않은 그가 신경 써준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고 행복해요. 평생 이런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도란도란'은 옛날에 다녔던 회사 근처의 작은 빵집 이름이었어요. 지나다니면서 맡던 고소한 버터 냄새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가끔 아침 허기를 달래주어서였을까요. 출퇴근길에 매일 보던 그 단어가 왜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새 제 마음에 따듯한 빵 냄새가 '도란도란하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준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그는 그 당시 옆 사무실 직원이었어요. 어쩌면 자연스럽게 출퇴근하면서 '아, 저 사람과 도란도란하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만들어준 걸지도 몰라요. 너무 억지인가요? 알아요. 그런데 원래 사랑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무엇이냐 물으면 역시 도란도란일 것 같아요.

그가 없는 밤이면 잠들기 전 전화해서 "자기 전에 도란도란 좀 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하기도 해요.

그럼 또 바쁜 와중에 일하면서 도란도란 대답해줘요.

그럴때면 역시, 열심히 일해서 더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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