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도 아니고.
* 이번 화부터 (구)짝꿍은 편의상 '식혜'로 기재됩니다.
2023년 4월에 연애를 시작해서 2024년 2월부터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같은 아파트지만 옆집에 살았다. 이게 가능했던 건 우리가 머물던 행복주택이 미달이었고 선착순으로 동호수 지정이 가능했던 특이 요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문 방은 혼자 살기엔 충분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구조와 평수였다. 그러나 짐이 많은 나와 반려묘 한 마리, 여기에 남자 한 명이 더 함께 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내가 짐이 없거나 반려동물이 강아지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에겐 애매한 공간이었고 그렇게 옆집으로 구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불편한 점은 딱 하나, 식혜는 일이 많았고 사무실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초기 적응이 오래 걸렸다. 이사 직후 한동안 불안이 사그라들질 못했다. 그 외엔 모든 게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 중요한 우리에게 옆집이라는 특이한 형태가 장점으로 작용했다. 에어컨을 한 대만 사면 된다는 것도 좋았다. 세탁기도 한 대만 사는 데다 잠을 안 자는 집에서만 빨래하고 건조대에 널어두는 것도 편했다. 자취하는데 밥도 빨래도 다 옆집으로 밀어버리니 공간이 더 넓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그만큼 식혜의 집이 창고처럼 쓰인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낯선 곳에서 불안하던 초기와 달리 집에 적응해 갈수록 함께 사는 동안의 트러블도 줄어들었다. 규칙을 정한 것도 아닌데 배려하는 방식이 서로 비슷했다. 내가 밥을 하는 동안 식혜는 청소기를 돌렸고, 무언가 사면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돈을 반씩 보냈다. 가계부를 따로 작성하지 않았는데도 불만이 없었다. 둘 다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기 때문에 함께 카페에 가서 일하는 것도 즐거웠다.
행복주택에 사는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 이사 갈 생각뿐이었다. 주말이면 가끔 임장을 함께 다녔고, 종종 부동산 어플을 키고 함께 이사 갈 집을 탐색했다. 그러니까 결혼해서 이사 갈 집을.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까진 그 집에서 오래도록 살 계획이었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이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리모델링 비용이며 결혼식 비용이며 생각할수록 막막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그 계획을 내 손으로 지워야 하는 날이 왔다.
2025년 7월 13일. 근래 들어 늘 그랬듯이 어수선한 마음을 외면하며 떠난 데이트.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그것도 식혜의 권유로. 원체 영화와 안 익숙하기도 했지만 최근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보이는 식혜가 먼저 영화를 보자 하다니. 내가 요즘 힘든 게 티가 났나? 심지어 조금 멀리 있는 곳에 가도 된다고 한다. 얘가 어쩐 일인가 들떴지만, 그날은 나도 조금 피곤해 인근 영화관에서 슈퍼맨을 봤다.
영화가 재밌었어서 카페에서 한참을 떠들었다. 그것도 신기했다. 우리가 카페에서 일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하지 않는 건 손에 꼽히기 때문에. 그래, 우리도 가끔은 쉬는 날이 필요하지. 오전에는 일했으니까, 식혜도 좀 쉬고 싶은가 봐. 카페에서 나와서는 어떤 의심도 없이 산책도 하다가 이제 막 오픈한 막창집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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