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거.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자기도 결혼하고 싶었고, 그런데 모아둔 돈으로는 집을 구하기 어려워 보였다. 회사에서는 월급이 밀린 지 오래고, 이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막막하다. 그간의 경력이 애매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부터 탐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점점 조급해졌고 어떤 정보를 듣고 작은 금액을 시험 삼아 넣어보았다. 금액이 올랐다. 그때부터 갑자기 답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고, 가지고 있는 돈을 거기다 넣었다. 돈이 오르면 짜잔- 하고 보여줘야지. 그다음부턴 옆집이 아니라 한집에 사는 거야. 그런데 그 이후 갑자기 후두두둑-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급락했다. 심장이 철렁-하며 판단이 흐려졌고,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 보증금을 빼서 더 넣었다. 그 다음 역시 모두가 예상하듯....
그 쯤 되니 자기도 그동안 인터넷에서 봤던 어떤 사람들처럼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런 일을 피하고자 봤던 영상, 그러니까 위험한 코인에 빠지는 과정 같은 영상들. 자기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는 걸 알고 나니 손이 벌벌 떨렸고, 월급도 밀리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고, 그런 그 앞에 내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결혼 예산을 들고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의 예산은 사실상 식혜의 돈이 전부였다. 연애 초부터 식혜는 항상 내게 돈 모아올 생각 말고 빚만 없애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빚을 내가 스스로 없앨 수 있도록 돈을 아끼고 모으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거면 된다고. 식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나 때문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하지 않으려 해도 자책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동안엔 당황해서,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며 우는 식혜는 처음 봐서, 나도 머리가 새하얘져서 등만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울던 식혜가 먼저 코를 풀러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상황 파악이 되자 나도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예견된 이별이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리는 이미 6월에 한 차례 이별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식혜는 그저 울면서 더 이상 만나기 힘들단 말만 반복했고, 그때는 분명. 분명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고, 앞으로가 막막한데 너를 잡아둘 수만은 없다 그랬었다. 더 이상 너를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없다고. 너는 아직 너무 어리고, 예쁘고, 좋은 사람인데 불확실한 자신의 마음 때문에 불안정한 자신의 미래 속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런 그를 붙잡은 게 나였다.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나 아직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안다고. 지금도 내가 아플까 봐, 이별을 말하면서도 내 걱정만 하는 네가 마음이 식었을 리가 없다고. 나는 그거면 된다고. 식혜는 마음이 혼란스럽다 했지만,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며 확신했다. 마음이 식은 게 아니구나. 어딘가 도망가고 싶은 거구나.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