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이제는 마음의 방향을 틀어야 할 때

by 말복


헤어지고서도 보름정도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 우리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도 있었다. 이제 일이 없어진 식혜는 퇴사 처리를 위해 (그리고 퇴직금 처리를 위해) 3-4일 정도 해외 본사에 다녀왔다. 식혜는 혼자 남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며칠 전부터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싸웠다. 함께 있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것도 출국을 앞두고 다툼이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식혜가 예민히 굴었다. 출국 전날, 우리는 함께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슬슬 정리할까 하고 먼저 씻고 온 식혜가 갑자기 표정이 굳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우리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건물엔 공용 샤워장이 있었다.)


예민할 때의 식혜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 않고, 오히려 짜증이 늘기 때문에 나는 가만 눈치를 살폈다.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묵묵부답인 채로 서서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니 입 안을 혀로 젓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 혹시 치아에 문제 생겼어?


그제야 식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사실 어제 투다리에서 같이 치즈닭갈비 먹었잖아. 매운 거. 그거 한 입 먹은 후부터 잇몸이 뭔가 붓는 거 같더라고. 근데 분위기도 깨기 싫고 해서 괜찮겠지 싶어서 다른 거 위주로 먹었는데 그 후로 부기가 안 빠지더라고. 뭔가 아주 작은 알맹이가 톡 떨어지는 거 같았는데 나 임시 잇몸이... 떨어진 것 같아. 거기 가서 사장님이랑 술 마셔야 할 텐데 어떡하지.


식혜가 회피할 때 돌아오게 만드는 방법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말하지 않는 걸 알아챘을 때다. 나도 아는 체하지 말아야지 할 때가 있지만, 식혜는 임플란트 치료 중이었고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모르는 척할 때가 아니었다. 심지어 식혜는 출국해서도 회식 일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해외에서 술을 더 마시면 치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답답했지만 고집을 꺾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일단 눈치를 살폈다. 화를 낸다기엔 미안하기도 했다. 전날 투다리에서 닭갈비를 시킨 것도 나였으니까. 그런 걸 고려하지 못하고 메뉴 선택을 해서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식혜는 눈을 맞추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 후로 잠에 들기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식혜는 걱정에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고, 누웠다가도 일어나서 의자에 앉았다. 괜찮은지 걱정돼서 살펴보려 갈래도 오지 말라고 화를 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떨어져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언젠가 이런 것 때문에라도 헤어질 수도 있었겠다. 이럴 때면 힘들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마음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점점 나도 생각에 잠겼고 한숨과 어색한 적막이 흐르는 새벽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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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을 그리는 행복한 말랑 복숭아, 말복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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