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한 지 한 달도 되지 않던 무렵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데이트를 하고, 식혜 집 인근 백화점 4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식혜도 나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 정도. 통창 너머로 오래된 상가와 아파트가 보였고, 주말에도 차들이 빼곡히 지나가며 빵빵대고 있었다. 서울 외에서도 이런 풍경을 본다는 게 숨 막힌다 싶었다.
그런데 식혜가 한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아파트라도 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저 아파트 살 돈이면 더 좋은 원룸 월세를 사는 게 안 낫나? 그런 생각을 했다. 2년 전만 해도 아파트는 내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아파트를 어떻게 사. 대출받는데도 일정 금액은 있어야 한다는 아파트. 너무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아서 감도 안 왔고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식혜에게는 그런 목표가 있었다. 1억 정도까지 모아서 조금 낡았더라도 괜찮은 아파트를 사서 아이를 키우다가, 그다음에 집값이 오르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그 외에도 나는 어려울 것 같았던 상상만 하던 중산층의 화목한 가정의 심상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이미 몇 천만 원 정도는 모았다고 해서 놀랐다. 왜 놀랐냐면 식혜는 일을 늦게 시작했고, 해외에서 학교를 다녀 학자금도 상당했을 것 같고, 그 당시에도 월급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매일 점심은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때우던 사람이라서 놀랐다. 나는 어제도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는데.
나는 방임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경제 교육은 고사하고, 씻는 법 조차 제대로 배우질 못 했다. 부모님 없이 혼자 살던 청소년기에 이불을 펼치면 면적이 사라지던 집에서 지냈고, 성인이 되어서는 침대 놓을 수 있는 원룸으로 이사했을 뿐이고, 조금 더 모았을 때는 캣타워나 고양이 용품을 놓고 움직일 면적도 있는 정도로 이사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모았냐면 그건 아니고, 자취촌 역세권에서 자취촌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그렇게 업그레이드해 나갔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쁘단 생각을 했는데, 그럼에도 사는 게 빡빡하다 싶어 배달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인생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식혜가 낯선 타인처럼 느껴졌다. 빌라 원룸 월세를 살던 그가, 나와 같이 익숙한 밥을 먹고 카페를 가던 그가, 옆 사무실에서 일하던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 나를 이해 못 하겠구나. 갑자기 벽이 느껴졌고, 마음속 방어막이 순식간에 부풀어졌다.
- 신기하네. 나는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냥 원룸에서 시작해도 되는 거 아니야?
-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저는 그러고 싶어요. 저는 말복님과 비슷한 취미는 없어도 돈 모으는 게 취미라 해야 하나, 그게 즐거워요. 그리고 남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걸요? 돈 모아서 결혼하고,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 계속 이사를 다닌다고요? 그럴 거면 집을 왜 사? 상상만 해도 힘들어요.
- 그럴 수도 있죠. 집을 뭐 다 올려간다기보다는 그런 루트도 있다는 거죠.
-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아요. 결혼하는 것도 돈인데 집도 사야 하고, 대출 이자도 내야 하고 이런 걸 생각하면.
- 그래요?
- 응, 결혼은 딴 세상의 이야기 같아요.
식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의 의미를 애써 모른 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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