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1부 끝.

by 말복




반강제적으로 반쯤 휴식기를 보내는 프리랜서였던 나도 매 주 화요일과 토요일은 수업이 있었고, 때마침 장기 계약이 들어왔고, 수요일마다 니트컴퍼니에 출근하고 있었다.


왜 일은 항상 쉬고 싶을 때 찾아올까. 일이 없을 땐 제발 들어오라고 고사를 지내도 들어오지 않던 일들이 그 시기에는 야속하게 느껴졌었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고, 마음 좀 쉬게 두고 싶은데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게 괴로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을 만나러 다녀오고야 알았다.


아, 일이 날 살렸구나.


회사를 다니던 때에는 이별로 아플 때, 그렇게 일이 싫을 수가 없었다. 출근하는 데에도 힘이 많이 들었고, 일하는 동안엔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워내야만 했다. 쉴 새 없이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퇴근길에는 녹초가 되었고, 집에 와 스러져 잠들 때면 다시 이별의 아픔이 떠올라 울다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출근길이 무거웠다. 제발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별이 가르쳐 준 것 중 하나는 마음의 아픔에는 정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였다. 그 어떤 치료법에도 이면이 있었다.


이별 후 초반, 식혜가 아직 내 곁에 있었을 땐 일이 없을 때도 식혜가 나를 일으켰다. 일어나서 밥을 챙겨주고, 카페로 끌고 나갔다. 가서는 뭐라도 하라고 하니 노트북을 꺼내거나 아이패드를 꺼내 뭐라도 끄적였다. 끄적이다가도 하릴없이 멍 때리고 있으면 다음 장소로 날 이동시켰고, 때로는 나를 끌고 사무실에 가서 정리를 시켰다. 군소리 없이 정리하다가 밥을 먹었고, 밥 먹고 나른해져서 커피 한 모금 하고, 그러다 식혜가 시키는 걸 뭐라도 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차릴때면 어느새 밤이었다. 그럼 씻고 잠에 들었다.


그 때의 나는 식혜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눈물을 쏟았었다. 중반쯤 되니 그 정돈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가끔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별 후 중반, 식혜가 아직 우리 집에 머물렀지만 종종 떨어져야 했던 시기에는 일이 나를 일으켰다. 여전히 식혜는 나를 끌고 카페에 갔고, 일을 하라 했다. 내 일정을 체크했다. 연애하는 동안엔 내가 늘 그의 스케쥴을 챙겼는데, 이별하고나니 그가 내 스케쥴을 챙겼다. 그럼 나는 가만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두드리다보면 금세 일에 빠져들었는데, 그러다가도 현실 감각이 돌아오면 식혜가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럼 다시 안심하곤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첫 외부 일정을 나서던 때는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살짝 걷어졌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을까?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집중할 수 있을까? 했는데 걱정은 사치였다. 일하는 동안 잠시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이별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처럼 웃고 떠들며 일하다 다음 날이 되면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와.. 대박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기에 가능했던건지, 타인을 오랜만에 만나 그랬던건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그 후로는 외부 일정이 차츰 차츰 내 마음을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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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을 그리는 행복한 말랑 복숭아, 말복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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