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정한 사람

어쩌면 자기 자신한테만 다정하지 못한 사람

by 말복




길을 걷다가 화단 밖으로 나온 달팽이나 지렁이를 옮겨주는 사람. 옮겨줄 때도 행여나 작은 생명체들이 다칠까 조심스레 잡는 사람. 평소엔 그런 미끄덩한 감촉을 싫어해 몸서리치지만 생명 앞에서 용기 낼 줄 아는 사람. 여름에는 혹시나 개미를 밟을까 바닥을 유심히 보면서 걷는 사람. 식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본 남자들 중 가장 섬세하고 다정하고 상냥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사 오고 첫 해에 겨울을 맞이하며 내가 말했다. "저 큰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 붙이고 싶다." 식혜는 비웃지도 놀리지도 않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도 붙이고, 리본도 붙이고! 그치?" 며칠 후 아파트 입구에서 식혜가 가방에서 별 장식을 하나 꺼냈다. 조심스럽게 나무에 붙이며 사진을 찍고 단톡방에 올리며 덧붙였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치우겠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된다면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 아파트의 트리가 입주민들의 손길을 더하며 하나 둘 채워지더니 어느덧 근사한 트리가 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겨울이 되었다.


그런 소박함을 지닌 그가 좋았다. 마음을 쓰는 법을 아는 게 좋았다. 다정함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좋았다. 따듯함으로 주위를 물들게 만드는 말씨가 좋았다. 그 모든 것을 좋아하니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식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식혜가 아직도 코인을 하고 있다.


7월 언젠가, 헤어진 지 그래도 열 흘은 지났을 무렵 집으로 돌아가며 투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점은 늘 그랬듯 언제인지 모른다.


- 나는 주식을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장기 투자만 하는 것도 그렇고.

- 저도 주식은 다 장기투자예요. 다 마이너스라 그렇지. 흐흐.

- 웃어?

-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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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을 그리는 행복한 말랑 복숭아, 말복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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