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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Feb 22. 2017

패션쇼 리뷰하기(1)

에디터가 쇼에서 읽어내야 할 것들

최근 패션쇼 리뷰는 에디터들의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분야가 되었다.


패션쇼의 숫자도 부쩍 늘었는 데다, 대중들의 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패션쇼는 제품을 수주하기 위한 트레이드 페어(TradeFair)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제품 수주의 기능은 오히려 줄어들고,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쇼 비즈니스로서 정착해 가고 있다.


오늘은 지난 10월 파리에서 열렸던 크리스천 디올(Christian Dior)의 쇼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이 쇼는 새로운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의 데뷔 쇼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패션 블로거들로부터 꽤 악평을 받았던 쇼이기도 하고, 해외 에디터들에겐 나름 호평을 받았던 쇼이기도 하다.


논쟁적인 쇼는 언제나 스터디 하기 가장 좋은 쇼다. 지금부터 디올의 지난 시즌 쇼의 세계로 들어가, 어째서 다른 평가들이 존재하는지와, 패션쇼 리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한 번 생각해보자.

단, 여기서 다루는 내용들은 에디터보다 단계가 높은 크리틱(Critic) 수준에서 본 쇼의 모습들이다. 즉, 보다 깊이 있게 내용들을 다루었는데, 이는 스터디를 위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걸 모르 면 쇼 리뷰를 쓰면 안되나"라는 부담을 갖는 일은 없길 바란다. 첫 글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중요한 마음 자세는 '아, 이런 부분을 보강하면 되겠구나'라는 장기적인 방향을 세우는 것이다.  


1.    발렌티노(Valentino)와의 유사성 비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디올의 디렉터로 임명되기 전 발렌티노의 디렉터를 맡고 있었다. 발렌티노는 원래, 치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의 듀오가 이끌던 브랜드였으나 지금은 피치올리가 혼자 도맡고 있다.

발렌티노에서 영입된 치우리의 쇼였기에, 발렌티노의 잔상은 분명 존재했다. 특히 발렌티노의 스테디셀러인 미디 기장의 프록(Frock) 가운들과 레이스 드레스들이 디오르 쇼에 다수 등장했다는 점이 이런 오버랩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블로거들에게 가장 큰 비판을 얻은 지점이었다.

2017 SS Valentino 디자인
2017 SS Christian Dior 디자인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저 미디 기장의 프록드레스는 발렌티노의 것일까, 아니면 치우리의 것일까?

발렌티노의 창업자이자, 선대 디자이너였단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Clemente Ludovico Garavani)는 이런 프록 드레스 디자인을 선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시그너쳐 스타일은 깔끔하게 재단된 레드 빛의 슈트와 드레스들이었고, 그 선홍색은 발렌티노 레드(Valentino Red)라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발렌티노=레드로 이어지던 것이 창업자가 만든 시그너쳐이고 유산이다.


발렌티노 쇼에 이런 프록드레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치우리와 피치올리가 디렉터로 온 이후였다. 다시 말해, 미디 기장의 프록 드레스는 발렌티노가 만든 유산이 아니라, 치우리와 피치올리의 개성을 드러내 주던 아이템이란 이야기다.


한 디자이너가 어떤 브랜드에 디렉터로 영입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그 하우스의 정신만 계승하는 게 맞을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 논쟁 끝에 얻은 결과는, 누구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타인의 디자인을 계승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는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심장이 살아 숨쉬는 감성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캘빈 클라인으로 옮겨간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첫 번째 캡슐 컬렉션 또한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을 보자. 이것은 완전한 캘빈클라인일까?


라프 시몬스의 Calvin Klein을 위한 첫 캡슐 컬렉션

위의 디자인은 놀랍도록 디오르와 오버랩된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라프시몬스가 여성복에서 즐겨 써 오던, 즉, 질 샌더(Jil Sander)에서도, 디오르(Dior)에서도 종종 보여주곤 했던 그의 시그너쳐 스타일과 오버랩된다.

대부분 하우스들은 디렉터를 영입할 때, 그의 개성을 중시한다. 하우스는 결코 새로운 디렉터가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하우스의 전통이라는 과거를 답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코 바라는 것은 하우스의 오랜 전통에 디렉터의 새로운 퍼스낼리티가 접목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것이다.


2.    치우리가 바라본 디올의 아카이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디렉터건 새로이 유서깊은 하우스에 영입되었다면 치러야 할 신고식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브랜드 고유의 아카이브(Archive: 자료실, 즉 과거의 디자인)들을 충실히 스터디하고 그에 대한 재해석을 데뷔 쇼에 선보이는 것은 관례가 되어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디올의 경우 그 창립자의 시그너쳐인 바 재킷(Bar Jacket)은 매번 디렉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등장한다. 치우리 또한 디올의 바 재킷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임으로써 창업자와 하우스에 대한 오마쥬를 표현했다.

Dior의 아카이브를 대표하는 Bar Jacket
치우리의 Bar Jacket 재해석


그런데 치우리의 쇼에선 또 하나의 신선한 오마쥬가 있었다.

그건 바로 한 때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디오르 옴므의 디렉터로 있을 때 사용했던 벌 무늬 자수를 자신의 데뷔 쇼에 활용한 것이었다.


에디 슬리먼이 창안해 사용하던 벌 무늬 자수
치우리의 벌무늬 자수


보통 그동안 럭셔리 하우스들의 디렉터들은 오로지 창업자의 아카이브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구도 현대의 자기 전임 디자이너들이 보여주었던 스타일들을 다시 이용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치우리는 이런 불필요한 관념을 쿨하게 갈아치웠다


“무슈 디오르(창업자 크리스천 디오르)는 사실 하우스를 10년만 운영했잖아요. 이 브랜드의 아카이브는 그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쌓아온 총합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그동안 축적되어온 더 많은 것들을 활용해볼 생각이에요”


치우리의 이런 태도는 매우 신선하며, 시대에 맞게 들렸다. 누구도 자신의 전임 디자이너와 경쟁해야 할 이유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들에게 그런 강박관념은 존재해왔다. 전임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전임 디자이너가 한 디자인을 부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치우리는 이를 쿨하게 깨뜨렸고, 여기서 사람들에게 첫 번째 호감을 얻어냈다.


한 하우스의 스토리는 그 하우스가 유서 깊은 곳이면 유서 깊은 곳일수록 복잡다단하다. 왜냐하면 거쳐 간 디자이너가 워낙 많기 때문인데, 그래서 에디터가 이런 하우스의 쇼를 리뷰할 때에는 해당 하우스에 대한 데이터가 풍부해야 좋은 리뷰가 가능하다.

이제 막 에디팅에 몸을 담근 새내기라면, 이런 지식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럴 때엔 먼저 타인의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자. 그런 뒤에 그 위에 자신의 감상을 얹는다면 좋은 리뷰가 나올 수 있다. 혹 부족하다면, 이번 시즌의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 시즌에 좋은 리뷰를 쓰면 된다. 조급한 마음으로 바라봐선 안될 일이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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