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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r 02. 2017

패션쇼 리뷰하기(2)

'상업성'과 '스토리', 쇼의 양대산맥 

지난 글에서는 쇼를 리뷰할 때, 에디터가 보아야 할 두 가지 요소를 먼저 이야기한 바 있다. 첫째는 그 디자이너의 개성이요, 둘째는 유서 깊은 하우스의 경우 그 아카이브에 대한 해석이 어떠한가 하는 점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세 번째 요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세 번째 요소는, 충분한 사전 지식 없이 쇼를 보게 될 경우 에디터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때로, 어떤 디자이너의 경우는 이제 막 데뷔하여 사전에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신진 디자이너의 경우는 아직 아카이브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그의 디자인 기조를 충분히 이해한 뒤 리뷰를 쓰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 취지를 담아 프로그램 노트나 사전에 언론에 배포할 칼럼들을 작성해 둔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쇼에 대한 자료를 숙지한 뒤 쇼를 보고 리뷰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자료마저 부족한 경우도 있다. 어떤 디자이너는 프로그램 노트도, 사전 배포 파일도 없이 그냥 쇼를 한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에디터 자신의 트렌드 감각이다. 부디 권하건대, 주관적이고 미학적인, 어려운 말 투성이의 현학적인 평가나 ‘아..! 아름다워..!’ 같은 느낌표 투성이의 감상적 평가에 빠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1.    쇼의 관건, ‘상업성’과 ‘스토리’의 양대산맥


좋은 쇼라면 다음 두 가지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첫째, 새로운 컬렉션이 그 디자이너의 고객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옷들인가. (사로잡을 사람이 에디터인 내가 아니라, 그의 고객임에 집중하자)  다시 말해, 상업적으로 잘 팔릴 옷들인가. 

둘째, 디자이너의 스토리라인, 혹은 메시지, 혹은 주제, 즉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는 분명하며 매력적인가.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그건 좋은 쇼다. 


지나치게 팔릴 옷만 있다면, 그 브랜드의 부가가치는 곧 떨어진다. 옷이란, 특히 디자이너 제품들이란 적절하게 상품과 예술품의 경계를 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예를 들어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의 경우, 지극히 상업적인 옷을 하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의 쇼는 늘, 돈많은 여성들이 선호할만한 원피스와 슈트로 가득 차 있다. 속물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란 미묘한 질시를 얻기도 했던 돌체앤가바나의 연매출은 1조 3천억이 넘는다. 이들은 최근 들어,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창의적인 스토리라인을 연달아 발표하며 최정상의 브랜드로 발돋움 중이다. 



반대로 무언가 창의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전혀 팔릴 옷들이 아니라면, 즉, 지나치게 예술적 접근을 하고 있다면 그 디자이너는 생존할 수 없다. 

프라다(Prada)의 경우, 한동안 지극히 철학적인 옷을 해왔다. 요 몇 년 프라다의 옷은 상업적인 부분이 크게 결여되었고, 이는 지난해 10% 매출 폭락이라는 충격적 결과를 프라다에게 안겨주었다. 에디터들이 프라다의 쇼를 볼 때 종종  ‘저 옷이 과연 여성들이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프라다는 지난 춘하컬렉션부터 다소 웨어러블한 방향으로 디자인을 전환했다. 



이제 다시 치우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디올은 무엇을 잘 파는 회사인가? 여성스런 스타일의 옷과 셀럽들의 레드카펫 드레스, 액세서리가 디올의 강점 아이템이다. 치우리의 쇼는 팔릴 만한 스타일이 충분했는지 살펴보자.


레이스 블라우스와 니트 드레스, 심플한 바 재킷들은 바이어들이 반드시 낙점할 스타일들이었다. 리본 장식의 사랑스러운 구두 또한 잘 팔릴 아이템이었다. 아울러 레드카펫 드레스로 선보인 황도 12궁 자수로 장식된 풍성한 튤 가운들 또한 여심을 설레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 실제로 디올 하우스는 그 패션쇼에서 자체적으로 “대단한 성공”이란 평가의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매력적이었을까? 

통상 디올에 데뷔한 디자이너라면, 첫 스타일은 매우 여성적인 스타일들을 내보낸다. 창업가인 디올의 정신이 전쟁 후에 잃어버린 여성의 우아함을 되찾는 것이었으므로, 이런 정신을 계승하는 옷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치우리의 오프닝 룩은 뜻밖에도 펜싱 룩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좀 지나치게 반복적이다 싶을 정도로 펜싱 스타일의 재킷과 팬츠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디오르와 펜싱? 이 새로운 조합에 갸웃해 있을 때쯤, 치우리는 슬로건 티셔츠를 제시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해요”라는 의미의 슬로건이었다. 



곧이어 또 하나의 슬로건 티셔츠가 등장했다. 

여기에는 DIO(R)EVOLUTION이라고 쓰여있었다. 만약 R자에 괄호가 쳐있지 않았다면, 이 단어는 혁명, Revolution이 된다. 그러나 R에 괄호를 침으로써 이 단어는 Evolution, 즉 진화란 의미가 되었다. 치우리는 디올을 변화시키되, 과격한 혁명이 아닌, 진화된 모습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아마 이쯤에서 많은 에디터들의 가슴에는 느낌표가 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피켓을 들고 목청을 돋우고 있는 거칠고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 파이터(Fighter)들의 모습이다. 이는 디올이 추구하는 우아한 여성과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다 그러나 펜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에서 우아한 파이터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펜싱 선수의 모습일 것이다. 혁명이 아닌 진화, 우아한 파이터, 펜싱, 이 모든 것들은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그녀의 메시지는 매력적이고 신선했다. 아마도 그녀가 꿈꾸는 디올은, 디올다운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현대 여성으로서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헤쳐가는, 그런 여성을 위한 디올이 될 것임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2.    이런 시대에 에디터란


패션쇼는 시각적이다. 에디터란 이 시각적 스토리들을 파악하여 문장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리뷰란 굉장히 어려운 것이구나’하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실제 에디터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의를 세심하게 내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에디터는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풍부하게 만드는 사람’이란 정의를 가지길 바란다. 더 풍부하게 보아내고 더 풍부하게 이해해서, 누구라도 “쇼를 직접 보는 것보다, 저 에디터의 글을 통해 보는 것이 더 재밌더라”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면, 그게 훌륭한 에디터이지 않을까. 


소비자가 없다면 디자이너도 없듯이, 독자가 없다면 에디터도 없다. 자신의 팬층에게 더 재미있고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그것이 여러분 세대에 맞는 젊은 감각과 톡톡 튀는 언어로 쓰여질 때 더 빛이 난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 대단한 하우스들의 이야기를 어렵게 접근하기보다는, 여러분 주변의 친구들이 실제 좋아하고, 그 옷을 많이 사 입는 디자이너들의 쇼를 리뷰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이 구매하는 옷이라면 상업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그 디자이너의 메시지에 매력을 느끼기도 쉽기 때문이다. 


곧 서울 패션위크가 다가온다. 모두 국내에 있는 브랜드요, 젊은 팬층을 많이 가진 브랜드들이다. 이들의 쇼를 보고, 풍부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문체로 써낼 수 있다면, 이는 명품 브랜드의 쇼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시작이다.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부디 진솔하게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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