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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r 31. 2017

소울팟 스튜디오, 곧고 바른 10년에 바치는 헌사

17-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

2017.3.31.

Photo: 서울패션위크 by 패션채널


패션위크 런웨이 리뷰: 소울팟 스튜디오(Soulpot Studio)


우리는 어떤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단기간에 성공한 이들을 벤치마킹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효율과 돈이란 잣대로 좌우된다고 믿게 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성급한 지름길을 찾아 저절로 흔들린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간으로서 우리는 전혀 다른 순간에 감동을 느낀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똑바른 눈빛으로 묵묵히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그의 여정이 한 해, 두 해 쌓여 어느덧 10년의 결실을 이루었을 때, 이런 순간에야 말로 우리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란 카타르시스에 전율한다.


오늘 소울팟 스튜디오의 쇼는 보는 이들에게 그런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무려 88,584시간, 3691일. 금번 17-18 추동 런웨이는 바로 소울팟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객석마다 놓인 손글씨의 에디션 노트는 지적이고 세련된 문체로 지난 10년의 소회를 적고 있었다. 김수진은 사실 글을 잘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 디자이너다. 노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잘 견디었노라.

 크루에게, 동료에게, 스스로에게

 이 무대에서 여전히 서서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영감이 완전치 못한’ 자신을 끌어안고 ‘상흔을 봉합’해가며 세월을 함께 해온 자신의 크루와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와 연대감을 표했다. 그 단단한 연대감, 그것은 소울팟 특유의 지성적 터치로 옷 위에 표현되었다.

이번 쇼에서 김수진은 메탈 레이싱(Metal Lacing)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했다. 니트와 가죽, 울 등 다양한 소재의 조각들은 섬세하고 미니멀한 메탈 레이싱으로 견고하게 연결되었다. 박시 코우트의 소매 위에, 부드러운 울 팬츠의 솔기 위에 은은하게 빛나는 메탈 레이싱은 사실 소울팟의 철학을 모르더라도 세련된 도시 여성이라면 탐낼 만한 것들이었다.


김수진의 쇼는 그동안 마치 잘 깎은 나무 조각처럼 따뜻하고 지성적인 감성을 보여줘 왔다.  이번 쇼에는 여기에 하나 더, 파워풀한 의지가 함께 서려 있었다. 메탈 레이싱과 함께 적절한 사파리 스타일, 유틸리티를 강조한 후드, 부족적인 포니테일 헤어, 매끈한 질감의 메탈 주얼리가 조화를 이루며 소울팟 트라이브(Soulpot Tribe)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에디션 노트에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무대 뒤, 디자이너의 삶”이란 글귀가 있었다. 척박한 한국의 디자이너 시장, 그 토양에서 10주년을 맞이하는 그가 새삼 파워풀한 여성상을 그려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 모델이 퇴장하고 피날레가 시작되기 전, 스테이지 벽에는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그 유명했던 소울팟의 세월호 추모 쇼의 한 장면이었다. 영상은 곧 소울팟의 지난 세월과 동료들의 축하 메시지로 이어졌고, 객석을 채운 소울팟 키즈들(소울팟의 골수팬들은 소울팟 키즈로 불린다) 과 업계 관계자들의 가슴 역시 묘한 감회로 벅차올랐다.



곧이어 소울팟을 기리는 10개의 단어. 그 단어를 슬로건으로 장식한 티셔츠 시리즈들이 미니 컬렉션으로 등장했고, 또박또박 새겨진 그 단어들은 보는 이들을 수긍케 하는 한 편의 시(詩)를 이루며 쇼를 마감했다. 그 10개의 단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Be Human ‘사람’이어라

The Pioneer Spirit 개척 정신과

Mutual Respect 서로에 대한 존중.

Arm in Arm 우리는 서로 팔을 엮어

Unorthodox Union 특별한 하나가 된다.

Quite Dignity 묵묵한 존엄.

Loop the Loop 어쩌면 맴도는 듯 하지만,

Although 그럼에도 불구하고

Still Standing 여전히 서있는

Soulpot Studio 소울팟 스튜디오


앞으로 10년 뒤, 또 한번의 애니버서리를 맞게 될 소울팟을 기대하며, 김수진 디자이너의 지난 10년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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