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 특강을 앞두고
오는 31일 라사라 패션학교에서 패션 에디터 특강을 하게 됐다.
에디터가 되고자 하는 친구들이 점차 늘어나는데 비해, 에디터를 향해가는 길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마련된 특강이다. 나는 그날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에디터계에도 빛나는 별들이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에디터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한 안나 윈투어(Anna Wintour)나 수지 멘 키스(Suzy Menkes)가 전부다. 때론 선배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좋은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디터를 세명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로빈 기브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디터이자 라이터다. 그녀는 보그나 하퍼스 바자가 아닌,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했다. 내가 로빈 기브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야말로 패션을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첫 번째 에디터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크리틱이 디자이너의 세계, 디테일, 트렌드, 옷으로서의 미학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로빈 기한은 정치와 경제, 고용과 같은 사회문제를 패션과 매우 쿨하게 연결 지었다. 기브한의 글은 위트가 넘치고 세련된 지성으로 가득 차 있다. 2006년 그녀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패션’이란 카테고리에 퓰리처상이 주어진 것은 로빈 기한이 유일했다. 아직도 서칭 하면 2010년까지 그녀가 썼던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88년부터 이탈리아 보그의 편집장을 맡았던 그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보그의 편집장이었다. 소짜니가 이탈리에 보그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녀는 일종의 패션의 민주화를 꿈꾸던 투사였다. 럭셔리 일변도의 잡지를 지양하고,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멋진 비주얼로 구성하길 즐겼고,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모델들을 고루 썼다. 아프리카 문화와 흑인 모델의 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뤘다. 패션=사치품이란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그녀의 이런 시도들은 이탈리아 보그가 패션지를 넘어 사회적 의미까지 담도록 만들었다. 프란카 소짜니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2000년대 발간된 이탈리아 보그를 서너 권 정도는 함께 보아야 한다. 콘텐츠의 배치, 헤드라인, 비주얼 모두에서 그녀의 색채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안나 윈투어는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는 에디터는 아니다. 그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통해 그녀의 여러 면모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나는 그녀를 가장 좋아했다. 그녀가 보그 편집장이 되고 처음 내어놓은 커버 사진은 패션 역사에 길이남을 명작이었다.
지금은 일상적인 차림이 되었지만, 당시엔 라크르와의 재킷과 낡은 청바지를 함께 코디한 다는 것은 대담한 파격이었다. 럭셔리와 스트리트는 당시만 해도 섞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항간에는 그 모델이 라크르와의 하의를 입기엔 지나치게 뚱뚱했다는 이야기나, 실은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이유가 무엇이었건 간에, 그 커버는 하이엔드 스타일과 스트리트 캐주얼이 만나는 첫 번째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안나 윈투어는 최근 들어 권위적인 에디터의 상징이 되고 있다. 보그지의 모기업 콘데 나스트의 총지휘를 맡게 된 이유도 있겠고, 그녀 자신이 실무를 어느 정도 떠나버린 이유도 있을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에디터는 디자이너와 독자 중 독자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일 때 가장 아름답다. 안나 윈투어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위치에는 서 있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대에 획을 그은 에디터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패션과 시대를 동시에 읽을 줄 알았고 창의적이었으며, 에디터가 한 발 앞서 리딩 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을 자기가 몸담고 있는 매체에 녹여내어 독특한 빛을 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에디터의 개성은 때로 매우 중요하다. 패션 에디팅은 신문과 비교하자면, 있는 일을 그대로 서술하는 ‘기사’라기보다는 에디터의 의견이 실리는 ‘사설’에 가깝다.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패션에 대한 풍부한 지식, 디자이너와의 민감한 교류가 원활히 조화될 때 비로소 훌륭한 크리틱이 탄생하는 법이다.
에디터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아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이 길은 잘 알려져 있거나 정비된 녹녹한 길은 아니다. 안나 윈투어는 15세 때 작은 부티크에서 취직하면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1970년 처음으로 하퍼스 바자의 어시스턴트가 된 뒤, 그녀가 보그지의 편집장이 되어 그 역사에 길이남을 커버 사진을 내놓기까지는 무려 18년을 기다려야 했다. 겉으로 보면 화려한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매 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세상이 나를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 막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얼까. 나는 첫째도 둘째도 행복한 에디터로 사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는 아직도 고민이 많이 된다. 1시간의 짧은 강의, 그 안에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먼저 에디터로 먹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다음은 그 안에서 나를 보여주는 법이 될 것 같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된다면 아무리 기나긴 여정이라도 기꺼이 기다리며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