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it Real Together
빠올로가 귀국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오정.
그와 그의 아내 박은숙은 프라다의 패턴사였다. 둘은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와 강남에 스튜디오 폴 앤 컴퍼니(Studio Paul & Company)를 열었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자신의 추억을 담은 사진들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찍은 사진이나 그가 작업했던 옷들, 자신이 특히나 좋아했던 스타일화 사진들은 그의 인생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스토리보드와도 같았다.
이 옷 아직도 기억나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패딩이 어찌나 많았던지… 하하
그 옷은 나도 기억하는 옷이다. 바로 Miu Miu의 2014년 추동 컬렉션, 에디터들에겐 꽤 호평받았던 쇼였다. 당시 Miu Miu는 상당히 많은 수의 달콤한 파스텔 패딩들을 시리즈로 선보였다. 다른 브랜드에선 도저히 만나볼 수 없는 옷, 그것이 Miu Miu의 색채와 트렌드, 둘 다를 잘 아울렀으니 호평받을 수밖에.
그러나 한편으론 절반 이상이 패딩이었던 그 쇼를 준비하느라 빠올로는 프라다의 스튜디오에서 얼마나 많은 땀의 시간을 보냈을 것인가.
저는 ‘리스펙’하는 게 무척 좋아요.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게 정말 좋아요
다양한 디자이너. 사실 빠올로가 일했던 곳은 프라다뿐이 아니다. 슈트와 재킷으로 유명한 아르마니, 알렉산더 매퀸, 구찌 같은 브랜드치고 그의 손을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그의 아내 박은숙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발렌티노, 안나 몰리나리, 블루마린, 돌체 앤 가바나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드레스를 작업해왔다.
한국의 디자이너들과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저도 한국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귀국을 결심했을 때, 많은 지인들은 그를 말렸다. 그의 유럽에서의 경력은 모험을 하기엔 너무나 화려하지 않은가. 대부분 공통적으로 염려한 부분은 ‘한국에서 너를 알아봐 줄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였다.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디자이너와 패턴사와의 연대감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옷을 꿈꾸는 디자이너라면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줄 패턴사를 알아보기 마련이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미 그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연락을 취해오고 있었다. 내가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그는 계한희 디자이너의 다음 컬렉션을 작업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해 못하는 믿음의 끈, 어쩌면 빠올로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그런 믿음이 아니었을까.
내가 스튜디오를 찍으려 하자 빠올로는 서둘러 옷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이건 나가면 안 돼요. 디자이너 옷인데.. 아직 공개도 안된 건데..!
그의 고집스러운 ‘쟁이스러움’은 가끔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한다. 나는 ‘절대’ 옷들을 찍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에야 스튜디오를 촬영할 수 있었다.
오정. 빠올로는 한국에서 오정으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이름으로, 한국의 시장 방식대로 맞추어 보겠다는 그의 의지다. 좋은 조건에서 일해왔던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쉬워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데끼’니 ‘마꾸라지’니 하는 한국식 현장 용어도 출력해서 따로 공부하고 있었다.
한국의 패턴사 오정으로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Make it real together
그가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고 싶은 꿈, 그가 패턴사, 즉 모델리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평생의 꿈은 바로 이것일 터이다.
이제 4달 뒤면 또 서울패션위크가 열린다. 오정의 한국행은 과연 어떤 결과를 이어나가게 될까. 계한희의 크리에이티브와 오정의 땀으로 빚어질 계한희의 새 컬렉션은 벌써부터 기대되는 바가 크다.
유럽에서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는 모델리스트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겐 참 반가운 얘기다. 오정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차세대 오정을 꿈꾸는 모델리스트 꿈나무들을 위해서도 다음 서울 패션위크에서는 밀라노나 파리에서처럼 그가 작업한 옷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