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질문 던지기
‘저 사람은 진짜배기야’
누군가 이런 말을 할 때, 우리는 암암리에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챈다.
우리 주변에는 사실 진짜배기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다. 회사마다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무능한 리더들이 반드시 존재하며, 이곳저곳에선 식견 없는 사람들의 강의가 넘쳐난다. 오늘도 뉴스에는 자격 없는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왜 저런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그는 왜 저런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정당성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다소 불문명해 보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배기’란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진짜배기라 불려지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정당하거나 혹은 과소평가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 진짜배기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최순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덴마크에서 정유라가 체포되었을 때, 한국에선 작은 논란이 일었다. 모 언론인이 JTBC의 신고로 정유라가 체포된 것을 비난하며, 다음과 같은 기자의 절대적 원칙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는 취재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이제까지 규범으로 여겨온 중요한 원칙’을 JTBC가 깨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원칙을 얘기하면서 CNN의 에디터였던 레이철 스몰킨의 칼럼을 이렇게 인용했다.
CNN의 정치부 에디터인 레이철 스몰킨은 2006년에 AmericanJournalism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을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구호요원이 물을 나눠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빨리 나눠주지 못하면 폭동이 날 것 같다는 거다. 기자는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가?"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던 스몰킨은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대답을 하는 데 충격을 받았고, 기자는 역사의 관찰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라고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에 의아해했다.
한편, 이런 주장과는 전혀다른 행동을 하는 기자도 있다. 지난 4월 시리아에서 자동차 폭탄이 터졌을 때, Abd Alkader Habak라는 기자는 폭탄 소리에 놀라 그만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곧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앞에서 피 흘리는 소년을 발견했으며 취재를 뒤로하고 바로 그 아이를 들쳐 안고 피하기 시작했다. 그의 카메라는 아무렇게나 흔들리면서 당시의 압박감을 말해주었고, 그의 이런 모습은 다른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다른 기자들이 찍은 사진에서 Abd Alkader Habak는 한 소년을 구하고는 또 다른 소년에게 다가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이 또한 CNN을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었다. 물론, 아무도 그가 원칙을 위배했다고 비판하는 이는 없었다.
과연 기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사람인 걸까. ‘진짜 기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디자이너 사이에선 매우 익숙한 주제다. 어떤 디자이너는 진짜배기 디자이너란 소리를 듣고 어떤 디자이너는 ‘좀 가짜’ 같단 소리를 듣는다. 나는 얼마 전 두 젊은 디자이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두 디자이너 모두 상당히 독특한 컨셉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 우리는 보통 이런 것들을 그 디자이너의 ‘시그니쳐’라 부른다. 나는 두 디자이너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당신은 왜 그런 디자인을 고수하는가’
한 디자이너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디자이너라면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만든 스타일이 곧 저예요. 저 자신인 거죠."
또 다른 디자이너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어요. 보는 순간 어찌나 멋지던지 그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그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생각하며 디자인을 시작 했는데, 저도 제 스타일을 딱히 잘 설명을 못하겠어요. 제가 뭘 고수하고 있는 건가.,? 사실 전 그때 그때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이 두 디자이너의 이야기는 어떻게 들리는가.
디자이너의 세계에서 ‘그는 진짜’란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마다 너무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데뷔하고, 반대로 너무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잊혀져 간다. 패션이 좋아 시작한 사람들 중 모두가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브랜드들을 흉내 내다 사라지고, 누군가는 자신의 스타일을 입증하지 못해 사라진다.
현재 가장 핫한 디자이너로 불리는 Gosha Rubchinsky는 레이 카와쿠보의 파트너이자 남편인 아드리안조프에 의해 발굴되었다. 조프는 루브친스키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I think to me it hit a nerve because of its authenticity. Lots of start-up brandssee Supreme and want to do a similar thing, but it often doesn’t ring true; itfeels fake or contrived. With Gosha, it feels very natural.
(고샤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진짜’라는 느낌이 나를 강하게 자극했죠. 많은 패션 스타트업들이 ‘수프림’처럼 되길 원하고 그들을 흉내내지만 뭔가 ‘진짜’란 느낌이 없어요. 다 가짜 같거나 부자연스럽죠. 고샤의 경우는 모든 게 매우 자연스워요.
‘기자는 관찰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는 매우 중요한 절대 원칙이므로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고 부르짖는다면, 그는 지금 도그마(Dogma)에 빠져 있을 확률이 높다. 사전적으로 ‘도그마’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 교의, 교조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도그마에 빠지면 스스로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신념의 정당성은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타인이 이를 묻는 것 또한 불경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과정은, 이런 맹신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모든 판단에서, 나의 가치관에 비추어 바른 행동인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내가 지녀온 가치관 또한 상황에 비추어 옳은 것인지도 자문한다. 이 과정은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 변화는 변절이나 값싼 것이라기보다는 ‘진화’인 경우가 많다.
앞서 인용된 레이철 스몰킨의 칼럼을 실제 읽어보면, 레이철 스몰킨은 무조건 기자는 관찰자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자신 또한 기자윤리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녀는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쳤을 때, 동료 기자들이 취재보다 사람들을 구하는데 앞장섰고, 이런 휴머니티 한 결과들이 오히려 정부의 무능한 대책을 지적하는 좋은 계기가 됐음을 목격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그녀의 칼럼은 정답 없이 끝난다. 그녀 스스로 기자는 관찰자여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말이다.
진정한 보도윤리란 사실 이런 끝없는 고민 위에서 찾아지는 건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켜져야 할 것은 어떤 원칙이 아니라, 매번 갈등하고 판단하고 책임자는 기자의 생생한 지성과 양심이 아닐까.
‘디자이너라면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이는 절대적 원칙이라고 목청 높여 강조하고 있다면, 그 또한 도그마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디자이너에게 자기 색깔이란 무얼까. 재능을 타고 난 친구들은 이 부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신의 말과 제품, 태도, 시각들이 자연스러운 일치를 이루며 같은 메시지를 던져온다.
문제는 ‘자기 색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먼저 사로잡혀 버린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제 디자인이 곧 저 자신이에요’라 말하기 전에 ‘어떤 스타일을 보았을 때 가슴이 뛰는가’를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물어보았는가?
스스로를 발견하기 전에 도그마에 먼저 사로잡히면, 자기 색깔이라는 걸 머리로 지어내게 된다. 인위적인 컨셉은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우며, 대체적으로 첫 시즌에 반짝하고 후속타가 없다. 왜냐면 애초에 그 아이디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해마다 비슷한 옷을 내면서 이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것이라 착각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그들은 패션의 본질이 ‘트렌드’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색깔과 트렌드가 만나 탄생하는 매 시즌의 새로운 변주, 디자이너가 보여주어야 할 건 결국 이것이 아니던가.
때로 ‘지켜야 할 것’이 너무 신성시되고 있다면, 내가 무언가 가짜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의심해 봐야 한다. 지금 던져야 할 정확한 물음이 무엇인지 모를 때 엉뚱한 도그마에 매달리기 쉽다. 진짜가 주는 울림은 복잡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결연하기보다는 자연스럽다. 옳은 질문과 치열한 고민, 그 끝에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을 정하고, 그 결정이 가져올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원칙은 매번 타당함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유효한 법이다. 원칙을 외치기 보다는, 매 순간 충실히 증명하고 나아가는 삶을 선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