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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Oct 22. 2017

씨쏘씬, 지나간 것들에 숨을 불어넣다.

2018 SS 헤라 서울패션위크 리뷰 

2017-10-20


씨쏘씬의 2018 춘하 쇼는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에서 열렸다. 조금 일찍 도착한 쇼장에는 게스트들이 추억의 거리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60-70년대의 어느 골목길 풍경을 재현한 거리에는 그 시절의 다방, 만화가게, 작은 식당들이 정겹고 그리운 모습으로 복구되어 있었고, 그 당시 평범한 이들의 가슴을 적시었을 옛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꼭 이화동 씨쏘씬의 쇼룸과 닮은 풍경이었다. 

하늘과 서울이 맞닿은 곳 이화동. 서울의 옛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긴 그곳에 이진윤의 쇼룸이 있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오뜨꾸뛰리에로 유명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귀국해서 커머셜 라인 씨쏘씬을 런칭하며 자리잡은 곳은 청담동이 아닌 이화동이었다. 시간이 남기는 자취들에 매료되는  디자이너 이진윤이다. 


쇼노트는 매우 클래식했다. A4 한 장을 가득 채운 설명과, 쇼에서 소개될 45벌의 옷에 대한 상세한 설명,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에게선 볼 수 없는 성실하고 클래식한 방식의 노트였다.    

이번 쇼는 그가 “수차례 컬렉션을 통해 소개되었던 옷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새로운 생명을 담는 작업”이자 ‘쓰레기’ 문제, 즉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인식을 담아내는 자리였다. 이진윤은 소셜벤처 Jerrybag,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Le Cashmere와의 콜라보로 ‘리사이클링’에 대한 함축적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오프닝룩은 엘레강스하게 비틀어진 리폼 감각의  화이트 셔츠와 스커트처럼 허리에 둘러매어진 광목 느낌의 자켓들이었다. 곧이어 낡은 울 재킷들과 아름다운 오간자들의 매치가 이어졌다. 


이 오간자 시리즈는 가을바람에 구름 같은 볼륨을 빚어내며 추억의 거리를 아름답게 채웠다. 그리고 발레리나 하나가 등장해 모델들 사이를 가는 몸짓으로 춤추며 쇼를 절정으로 이끌고 갔다. 


아주 많은 요소들이 녹아 있었다. 

이진윤의 아카이브를 훑어오는 오간자와 자수, 레이스, 한복 느낌의 드레스가 있었는가 하면, 현대적인 코드의 리사이클링을 의미하는 러버 코팅의 페이퍼 클로스(Paper clothes) 나 플라스틱으로 된 코우트들과 리워크드 진(Reworked Jeans), 제리백이 제안하는 과자봉투나 쓰레기봉투풍의 가방들. 


이 다양한 요소는 엘레강스한 터치의 해체적 테일러링과 추억의 거리라는 배경, 끈끈한 블루스 톤의 사운드트랙, 간간이 등장하는 중년의 모델들이 주는 기품 속에 유니크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알케미(Alchemy)였다. 


애초에 패션이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많은 옷들이 트렌드란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폐기되지만, 어쩌면 패션은 트렌드를 넘어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영감과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잊지 못할 잔상을 남기는 그 무엇이다.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앉아있던 게스트들 모두는 처음엔 바로 패션의 그런 점에 매료되어 이 인더스트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처럼 미친 듯이 만들고 미친 듯이 팔고 미친 듯이 버려질 옷을 하고 싶었던 이는 없었으리라.

그 날 이진윤의 쇼는 그의 아카이브와 리사이클링이란 메시지를 넘어, 게스트 모두에게 자신이 이 인더스트리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패션은 트렌드라지만, 트렌드를 뛰어넘기에 아름다운 것도 있는 법이다.

쇼의 말미에 등장한 웨딩드레스들은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주인공들을 찾아 입혀질 것이라고 했다. 쇼와 함께 진행된 ‘쓰레기 전’ 전시회에는 그런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치지 말아야 한다’.


이진윤의 쇼는 이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과거도, 꿈도, 젊었을 때의 초심이나 우리가 걸어온 자취들도, 그리고 지금은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무엇이라도 함부로 내팽개쳐져선 안된다. 그것들은 오늘의 쇼처럼 다시 한번 생명을 담을 수 있으며,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의미의 선물로 다가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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