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 리뷰
에이벨의 18년 추동컬렉션은 그동안의 행보에 대한 또 다른 이정표였다.
무엇보다 남성라인의 성공적 데뷔가 눈에 띄었다. 여성복 디렉터들이 펼치는 남성라인이라 보기엔 마치 오랜 시간 남성복을 다뤄왔다는 듯 남성 패션의 현재에 대한 확신으로 꽉 차 있는 Expansion이었다.
생각해보면 박의지-최병두는 꽤 카멜레온 같은 디자이너 듀오다. 이들은 판매용 제품 라인으로 전부터 에이벨컬렉션과는 또 다른 무드의 글래머러스 제품군을 전개해 왔다. 사실 에이벨의 화려한 액세서리와 펑크한 캐주얼 라인은 시장에서 꽤 유명하다.
그랬던 이들이 ‘에이벨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울트라 시크한 컨셉을 보여주었을 때의 충격은 사뭇 컸다. 어쩌면 이 듀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는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러니 어쩌면 남성복으로의 확장은 이들에겐 생각보다 매우 Seamless한 작업이었으리라.
전체적으로 쇼는 기분좋은(Feel good) 코우트와 니트의 풍부한 시리즈였다. 에이벨의 아우터웨어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했다. 가운풍의 핸드메이드부터, 복고풍의 레갈(Regal) 트렌치, 하늘거리는 러플 코우트들, Shapless한 케이프 코우트, 심플한 오버사이즈 블레이저까지, 마치 한국판 막스마라를 보는 듯 그야말로 광범한 레인지를 망라하는 코우트 컬렉션이었다.
쇼 노트에는 이번 시즌의 테마가 ‘빛(The Light)’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뜻일까.
쇼 노트에 관해 박의지 디자이너에게 묻자 그녀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엘리아슨은 빛과 공간을 주제로 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유럽의 설치미술가다. 빛과 공간은 어찌 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空)의 세계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와 형태감을 가질 수 있는 무한(無限)이기도 하다.
가만히 엘리아슨의 작품을 찾아보다 보니 에이벨이 그려내는 빛의 세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곡선의 틈,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흐름을 자아내는 유연한 테일러링은 어딘가 엘리아슨이 그려내던 작품들의 형태감을 닮아있었다.
팔레트에서도 빛의 의미는 돋보였다. 에이벨은 그레이와 브라운, 베이지와 같은 클래식한 팔레트에 빛이 담을 수 있는 풍부한 셰이드와 질감을 불어넣었다. 어떤 베이지는 포근한 캐시미어 니트였고, 어떤 베이지는 오래 빛에 노출되어 빛바랜 트렌치였다. 여기에 더 투명하게 빛을 투과시키는 에크루 컬러의 시스루 소재와 버터리(Buttery)한 컬러의 핸드메이드들, 오랜 시간을 품은 듯한 벽돌빛의 트위드 브라운들이 뒤섞였고, 여기에 환한 옐로우가 한줄기 햇살처럼 하이라이트를 더했다.
최근 컬러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해외 에디터들은 이제 밀레니얼 핑크의 시대는 가고 Z세대들의 옐로우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적어도 에이벨의 런웨이에선 이 트렌드는 적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에서 기분 좋은 빛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옐로우였다.
에이벨의 매출에 혁혁한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백과 구두에도 변화가 있었다.
디자이너 최병두는 종전의 화려한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모던한 코우트들과 완벽한 케미를 이루는 삭부츠(Sock Boots). 미니멀한 형태감의 이중 버킷백, 모던한 체인 백들로 새로운 라인을 펼쳐 보였다.
캐주얼 비중이 높은 서울패션위크에서 이렇게 정통 테일러링으로 승부하는 솜씨 좋은 브랜드를 발견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현대 도시남녀가 원하는 모든 쉬크함이 담겨있는 컬렉션이었고 견고한 소재와 팔레트, 테일러링이 빚어내는 공간과 빛의 멋으로 충만했던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