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
쇼의 공식을 이해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큰 꿈을 꾼 나머지 어이없거나 난해한 쇼를 펼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패션의 불꽃에 너무 데인 탓인지 지나치게 메마른 가슴으로 수주회 같은 상품전시를 펼치기도 한다.
패션이 가지고 있는 유혹과 상품성의 앙상블. 패션, 특히 디자이너의류 시장은 분명 감정과 드라마라는 독특한 요소가 그 생명력을 좌우한다. 그렇기에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곳이고, 그런 재능들이 부딪히기에 매 시즌 나의 재능을 드러내기 위한 치열한 연구가 필요한 곳이다
“불안정 속의 안정”
모호의 쇼노트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방사능에 대한 위험, 재난에 대한 보호와 사투는 사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익숙한 테마다. 영국의 걸출한 천재 Craig Green이나 The Soloist, Undercover 등 소위 스트리트를 주름잡는 일본발 브랜드들에서 우리는 이 테마를 자주 보아왔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이 시대에 갖는 Zeitgeist는 두렵고 불안하고, 결연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주제를 보자마자 두 가지 염려가 뇌리를 스쳤다.
첫째는 이 잘 알려진 유명한 테마를 붙잡아 과연 모호가 자기 색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Craige Green이나 The Soloist같은 브랜드는 미묘한 창의성들은 뭉게버릴 만큼 강렬한 색을 발하는 브랜드들이다. 자칫 이들과 비슷한 스타일로 그려진다면 위험할 것 같은 염려가 가장 컸다.
두 번째는 어째서 한국에서 이 테마를 얘기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한국에 이 테마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까, 공감대가 있다 한들 이런 옷을 소비해 줄 시장이 있을까라는 염려가 뒤를 따랐다. 신진 디자이너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그들의 옷을 소비해 줄 시장이 아니던가.
이윽고 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스타일 채 등장하지도 않았을 무렵, 나의 첫 번째 염려는 완전히 날아갔다. 디렉터 이규호는 놀랍게도 다른 브랜드에 흡수되지 않는 뚜렷한 자기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어딘가 중세의 Monk같은(그는 한국의 승려와 갑옷을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동양적이라기보다는 Medieval했다) 드레시한 실루엣들의 테일러링 피스들은 정말이지 고유한 그만의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쇼였다. 모델들은 방사능으로 멸망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처럼 핏줄부터 검게 오염된 듯한 메이크업을 하고 낙진을 뒤집어쓴 듯한 머리장식을 쓰고 나타났다. 장갑, 신발을 덮는 커버롤, 단단한 디테일로 무장한 유틸리티 아우터들은 쇼가 끝나고 바이어들을 실제 판매피스가 걸려있을 쇼룸으로 불러들이기 충분해 보였다. 모호는 쇼의 공식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들렀던 모호의 쇼룸에서, 나는 이들이 수집한 섬세한 소재들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왁스 코팅되었다고 생각한 소재들은 표면의 구김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한 소재들이었다. 쇼용 머리장식으로 등장했던 낙진의 텍스쳐는 그대로 가죽 재킷 위에 섬세한 엠보싱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보기 드물 정도로 섬찟하고 빼어난 쇼였다. 그러나 마음 한쪽 깊이에는 아직 안타까운 매듭이 남아있었다. 그건 무언가 비즈니스적으로 엇박자를 놓고 있다는 느낌.
한국 시장과 모호, 그리고 지금의 서바이벌 컨셉 사이에는 어딘가 불협화음이 있다. 모호가 결국 만나야 할 바이어는 부득이하게 Craig Green, Rick Owen 등과 나란한 자리에 옷을 걸어 줄, 즉 이런 스타일의 옷을 취급하는 바이어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미학을 이해하고 다루는 바이어의 방한을 기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엇박자를 벗어나려면, 그런 유통들을 다이렉트로 겨냥할 수 있는 곳에서 사업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러기엔 이규호의 고유한 컬러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숍 안에 모호 만을 위한 행거를 세울 정도로 선명한 차별점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이 부족함은 사실 모든 신진의 공통점이고, 반려자 같은 바이어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과의 오랜 거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되니, 너무 염려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엇박자는 혹시 모호가 한국의 컨템시장과 타협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쇼를 보고 난 뒤 이 브랜드의 미래에 대해 아까운 조바심이 났다. 해줄 수 있는 얘기는 하나 뿐이다. 모호가 스스로의 충분한 자질과 크리에이티브를 믿고 단호히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좋겠다.
땅에 발을 붙이고는 날아갈 수 없다. 더 축축하거나, 더 드레시하거나, 더 메트로 하거나, 더 헤지고 낡거나, 더 오리엔탈 하거나 무엇이건 간에 더 선명한 자기 색깔로 크게 날아야 한다. 때로 추락할 때에만 숨어있던 날개가 펼쳐지는 법이다.
다음 시즌엔 더 크게 날개를 편 모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