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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r 21. 2019

빅팍(Big Park), "MANIA"라는 질문

2019 추동 서울패션위크 리뷰

이번 시즌 빅팍의 쇼 노트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틱한 구성과 영화같은 플레이는 빅팍 쇼의 묘미였지만, 디자이너 박윤수는 이번 시즌 다시 옷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자 하는 것 같았다.


빅팍의 본질인 '옷'에 충실한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비율, 실루엣, 핏, 소재들의 특성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축적된 장인들의 값진 노하우, 땀, 노력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했습니다.    


쇼 노트의 하단에는 Special Thanks To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쇼의 스탭과 협찬사들은 물론이고, 빅팍의 쇼에 참여한 모델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었다. 김도현, 김민정, 김명진 김사라..가다다 순으로 씌어진 목록에서  한국에 이런 이름들의 모델들이 활동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 박윤수는 얼마전 네이버 디자이너 윈도우 봉제마스터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값싼 공산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다. 거장과 봉제마스터가 만나 선보인 프로젝트 자켓은 평소 디자이너 의류를 구매하기 어려웠던 젊은 소비자를 위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소비자들은 처음 접해본 놀라운 완성도에 매료됐고, 이 한장의 멋진 자켓은 즉시 완판되었다.


이번 2019 추동 컬렉션은 그 프로젝트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평생 옷을 지으며 살아온 디자이너가 '매니아'란 이름으로 선보이는 옷의 본질, 이건 그 어떤 테마보다 진중하고 묵직한 테마가 아닐 수 없다.


게스트가 많아 입장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꽉찬 장내를 정돈하고 비로소 시작된 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쇼의 Riff(반복악절)은 크게 두 가지였다. 백합무늬 프린트와 '테일러링'.
박윤수는 테일러링의 진수(眞髓)가 무엇인지, 거침없이 담대한 커팅과 섬세한 변주를 통해 또렷하게 써나가기 시작했다.

 

빅팍의 시그너처인 오버사이즈 사파리(Oversized Safari) 코우트는 여전히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코튼, 울 트위드, 프린트 등 다양한 소재로 제안된 사파리는 거침없이 휘갈겨쓴 일필휘지(一筆揮之)처럼 시원시원했지만, 모델들이 뒤돌아 걸어갈 때면 뒷판에는 지퍼로 펼쳐진 후드와 뒷판에만 더해진 플랩요우크, 컬러블록 등 빼곡한 크래프트로 가득차 있었다.

가장 큰 감동을 준 건 여성용 울 코우트 들이었다.


더블페이스의 울 코우트들은 깊은 슬릿으로 장식해 모델이 걸을 때마다 멋지게 펄럭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피스들은 앞에서 보면 H라인이었지만 뒤에는 A라인의 깊은 턱을 넣거나 혹은 허리를 살짝 집어 핏앤플레어 느낌을 가미한 코우트들, 그리고 앞에서 보면 루즈한 A라인이었지만 돌아서면 풍성한 스커트단을 가진, 섬세한 터치의 코우트들이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 배포되는 쇼 사진에 뒷모습 사진이 없다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코우트의 뒷판에는 화려한 스커트단이 더해져 있다.
이 코우트는 앞에서는 오벌 H로 보이지만, 뒤에는 기모노슬리브와 깊은 턱이 독특한 A라인을 빚어낸다.
이 코우트는 뒷판에 작은 Nipping(살짝 집기)을 더했다.

총 42착장으로 진행된 이번 컬렉션에서, 박윤수는 빼곡히 40벌의 아우터를 선보였다. 젊은 친구들이 탐낼만한 체크 블레이저와 코우트들, 밝은 파스텔 체크의 인조 퍼와 벨벳 블루종 들이 최신 트렌드를 업데이트했다.

쇼가 끝나고 다시 한번 박윤수의 쇼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쇼를 다 보고 나니 미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글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여정에 있는 빅팍은 잠시 고향으로 돌아와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식을 통해 빅팍의 아이덴티티와 시그너처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노장의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현대 패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때론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옷들도 시장에 나와 '하루용 패션'으로 운명을 소진하고 사라진다. 이런 시장에서 디자이너나 모델, 모든 패션인들은 점점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옷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관계는 그렇게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실 패션은 '매니아'들의 세계여야 한다는 것.


쇼 노트에 모델의 이름과 스탭들을 적어넣은 디자이너 박윤수는 그런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디자이너에겐 '옷' 그 자체가 언어이고 표현인 것을.
오늘 빅팍의 쇼는 모두에게 패션이란 원래 무엇이었는지 따뜻하게 되묻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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