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추동 서울패션위크 리뷰
베터카인드의 쇼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디자이너 아영초이는 과연 어떤 스타일은 펼치는 디자이너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은 쇼장에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내용의 쇼 노트가 놓여있었다. '시각적 영감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집중으로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싶다'.. 갑자기 내가 쇼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란 염려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쇼가 시작되자, 나의 염려는 시원한 바람처럼 말끔하게 씼겨나갔다.
런웨이에는 아주 상쾌하고 도회적인 필굿(feel good)스타일의 트렌치 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튼, 나일론 베이스의 사파리와 트렌치룩이 주된 스타일이었는데 아영초이는 여기에 스포츠 루슈(ruche: 끈조임 장식)와 노매딕한 터치의 퀼팅을 매치해 전혀 색다른 느낌의 트렌치 룩을 완성해 내고 있었다.
최근들어 패션의 맥이 바뀌면서, 한 때 2-30대 커리어우먼 위주로 꽃피던 디자이너 꾸뛰르 시장은 지금 유니섹스 캐주얼 쪽으로 바톤이 넘어간 상황이다.
사실 한국에서 도심의 세련된 여성들이 입을 디자이너 꾸뛰르는 거의 고사 상태다. 디자이너들 사이에도는 남녀 컨템퍼러리 시장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장이라 소문나 있는 터라, 대부분의 신진 디자이너는 유니섹스 캐주얼에 몰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터카인드는 어쩌면 이런 스타일이라면 여성 컨템퍼러리 시장에서 디자이너 꾸뛰르가 뿌리를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여주었다.
쇼의 테마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트렌치, 스포츠루슈, 퀼팅은 누구나의 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staple이다. 하지만 때로 패션은 음악과도 같다. 단 13개의 음계만으로 인간은 수천년동안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왔는가.
베터카인드의 쇼는 아영초이가 알려진 음계들로 빚어낸 또 하나의 참신한 음률이었다.
도시 여성들이 원하는 패션이란 무엇일까.
도시의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은 드라마틱한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성이기 전에 사회인으로서 시대의 스탠다드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절제감, 동시에 창의적인 사람임을 내비쳐주는 적절한 크리에이티브, 아마 이것이 도시여성들이 원하는 최고의 패션일 것이다.
아영초이가 쇼 노트에 적었던, '시각적 영감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자칫 패션이 스토리와 변화를 추구하면서 보여주는 일탈은 적어도 베터카인드의 길이 아니라는 또렷한 표현이다.
아영초이는 사실 디자이너 최복호의 딸이기도 하다. 서울패션위크의 마지막 날, Trade Show 부스에서 아영초이를 다시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수줍게 웃고 있는 이 젊은 디자이너는, 이제 시작이지만 드물게 refined한 감성을 가졌다.
베터카인드는 좋은 유통망을 만나면 충분한 판매로 답할 수 있는 브랜드다. 부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지금의 감성이 더 멋지게 여물고 자라서, 고사되고 있는 한국 여성복 시장의 새로운 주자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