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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r 24. 2019

모호(Moho), 날을 드러낸 서슬퍼런 개성

2019 추동 서울패션위크 리뷰

모호의 쇼를 다시 본 건 1년 만이다. 

두 시즌 전 GN에서 강렬한 모호의 데뷔쇼를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과 걱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한국의 디자이너 시장은 대부분 스포츠나 유니섹스 캐주얼, 혹은 귀엽고 튀는 감각의 영패션에 집중되어 있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실 디자이너 의류를 구매하는 팬들 또한 이 시장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호는 한국 신진 디자이너들이 잘 가지 않는 길에 서 있다. 

이 브랜드의 미학은 영국의 Craig Green이나 일본의 Soloist와 같은 강한 캐릭터의 글로벌 꾸뛰르들과 공명한다. 처음 모호의 쇼를 보았을 때, 놀라운 크레에이티브에 대한 충격과 함께, 한국에 과연 이 시장이 있던가 하는 걱정이 든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모호가 런던이나 파리에서 데뷔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또 한편으론 전세계 남성복 시장에서 난다 긴다 하는 친구들이 온통 몰려있는 그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훨씬 더 깊이 찌르고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 하지만 또 그러면 그럴수록 한국에서 시장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란 생각, 이는 아마 모호의 데뷔 쇼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졌을 만한 경탄과 혼란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즌에는 도쿄아마존패션위크에 가느라 모호의 쇼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1년 만에 다시 보게 된 모호.


쇼 노트에는 이번 쇼의 주제는 '동물성'이라 적혀있었다. 디자이너들이 연이어 Fur-free를 외치고 있는 시대에서 모호는 동물의 습성과 동물적 보호본능을 다루고자 했다. 노트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사람이 동물의 것을 입는 것이 진정한 멋인가 ?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동물들의 털과 가죽이 인간에게는 소유물인가 ?



쇼는 강렬한 오프닝으로 시작됐다. 

먼저 스테이지에 불이 꺼지고, 무대 뒤에서 짐승의 포효 같은 남성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리고 드라이아이스가 깔리면서, 저돌적인 워킹으로 검은 Yetti(예티 : 히말라야의 전설의 설인) 같은 차림의 모델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천 개의 케이블 타이로 표현한 고슴도치의 가시, 뱀의 허물을 연상시키는 투명한 쇼피스들이 야성과 생존을 암시하는 아트풀(artfull)한 헤어스타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모호의 이번 쇼는 용이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온 느낌이었다. 

더 강하고 서슬 퍼렇게 날을 세우면서, 디자이너 이규호가 Craig Green이나 Soloist의 다카히로 미야시타와는 또 다른 잠룡임을, 그래서 서로 공명감 있는 미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멋을 전하는 유니크한 목소리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앞서 등장한 예티 피스들과 이규호의 또 다른 장기인 장중한 테일러드 피스들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여러 겹으로 레이어드 된 퀼팅  블레이저가 특히 돋보였는데, 착시적인 거대함, 몇 겹을 겹쳐 입어야 하는 일본 기모노의 동양적인 느낌, 중세의 기사와도 같은 엄숙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스타일들이다.

속된 말로 '포텐이 터졌다'라고 하는 건 이런 느낌 이리라. 실로 엄청난 에너지였다.


이제 해외 시장은 언제 어떻게 진출할지 정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모호는 한국 시장을 포기한 걸까 궁금하던 찰나, 많은 이들이 지난 1년 있었던 모호의 행적을 전해 주었다. 


패션킹으로 활동하는 박주민 블로거는 판교 현대백화점에 입점했던 모호 팝업 스토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곳에서 모호는 'Moho White Label'이란 대중적인 버전의 스타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또 탐미주의자 Piiin으로 활동하는 아트 블로거 김연진은  Vogue USA 수석 critic(에디터와는 달리, 평론에 중점을 두는 패션 저널리스트)인 사라 마워(Sarah Mower)가 모호를 My Favourite Menswear라 부르기 시작했다며 사라마워가 직접 모호를 언급한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모호는 파리 에스모드 동문인 디자이너 이규호와 CEO 박지근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다. 이 젊은 브랜드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지 않을 모양이다.

이번 런웨이는 또 와디즈에서 Fake라는 캠페인의 프로젝트로 이어진다고 한다. 


모호의 미래는 어떻게 열려나갈까.  

정부가 지원하는 디자이너들의 해외 런웨이 프로그램에 모호가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저렇게나 모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라마워가 직접 모호의 쇼를 보고 크리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호에겐 더 넓은 시장이 열릴 수 있을테고, 한국 디자이너가서울 패션위크에서 데뷔하여 글로벌하게 확장되는 멋진 선례적 궤적을 그려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모호는 정말 보기 드문 감성을 지녔다. 훌쩍 성장한 1년만큼이나, 다음 1년 뒤가 더더욱 기대되는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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