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좀 파줘

사랑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대답 중 하나를 찾았다.

by 편안


그녀가 말한다.

"귀 좀 파줘 자기야"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 문장이다. 귀를 파달라니. 광석이라도 있는 듯이 말한다.

조금은 귀찮지만 별 수 있나 파줘야지.

"귀이개 가져와 그럼~"

가져오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져 올정도의 일인가?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던져진 공을 가져오는 강아지 마냥 귀이개와 휴지를 가져온다.

그 모습을 보니 귀찮음을 무릅쓰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와 내기라도 한 모양이다.

옳다구나 내 허벅지 위로 얼굴을 뉘이고 티비를 보고 있는 그녀의 귓불을 잡아당겨본다.

"뭐 없는데?"

없다. 평소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푸라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래도 이왕 누웠으니 휘이 휘이 요리하듯이 저어 본다. 세상 행복? 뿌듯? 사랑?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그녀를 보니, 없다며 말하고 금방 끝내버리기에는 어떤 죄책감이 밀려올 듯하다.

"자, 반대쪽"

얼추 끝내고 반대로 눕는 그녀의 움직임이 신남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보고 있자니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겠다 싶다. 다시 휘이, 휘이 무언가 있는 척 저어 본다. 괜히 벽을 살살 긁었다가, 조심스레 깊이 넣어보았다가, 다시 위쪽 허공을 갈라 보다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광석을 캐내었다. 채굴 행위가 끝난 그녀의 모습은 완벽한 만족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의 만족감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도 누우라 말한다.


달도 암스트롱 이후에 오는 사람을 반길 때 기분이 이랬을까. 나도 엄마 이외에 귀라는 행성에 착륙한 이는 내 그녀가 처음이다. 위의 그녀가 느꼈던 무언가의 감정이 느껴진다. 나의 가장 은밀하고 취약한 곳 중 한 곳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오는 쾌감과 사랑, 안락함이 있다. 나의 취약점을 무방비로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줄 수 있는 이 행위가 단순히 귀에 이물질을 파내는 것 그 이상이리라.


채굴 결과 휴지를 보니 야외에서 먼지 많은 장소에서 일하는 나는 귀에 광물이 많았다. 광물이 주는 카타르시스였을까 싶지만 그건 아니었음을 다짐한다. 나에게 누군가 사랑이 무엇이냐 할 때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장면 중 하나다.


서로의 귀를 파준다는 것.


내가 열심히도 팠던 것은 광물도, 허공도 아니라 '사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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