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에서 살아남기

부정-부정=부정

by 편안

핸드폰이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어 가며 폰의 직사각형 화면은 옛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세상을 보여주는 작은 거울이 되었다. 그 축복, 혹은 저주받은 거울로 인해 내 손에 책이 잡히는 날이 드물다 못해 없어져간다. 책이 주던 울림 있던 말들 역시 사라져 가고 스마트폰에 비치는 영상이나 글들이 그 자리를 채우려 한다. 비록 책이 주는 진동과는 견주지 못하지만 엄지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 중 좋은 진동을 가진 문장들이 있다.


'인간은 부정을 인지하는 순간 부정할 수 없다.'


뇌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나오는 말인데 이럴 때 보면 뇌 과학이 참 재밌다. 내가 그리도 고뇌했던 것들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들이라니 의사에게 처방을 받은 기분이다. 부정을 인지하는 순간 부정적인 것을 잊거나 도망치려 해도 숟가락 살인마 마냥 따라온다 이 말이다. 이 부정이라는 게 우울감 슬픔 분노 등 다양하게 옷을 입고 찾아온다. 최근 여러 상황으로 인해 가지각색 부정들이 찾아왔다. 맛집이라 소문났는가 오랜만에 단체 방문이라 꽤 정신 차리기 힘들었다. 그 힘든 와중에 부정에 관한 영상을 보았고 위 문장이 낚시 바늘에 꿰이듯 꿰였다. 그렇게 낚여 올라가 그 정신없는 부정에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

스키선수가 내려가며 수많은 나무, 방해물들을 인지하기보단 자기가 가야 할 길 위주로 생각하며 임한다는 것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당장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 주저앉기보다는 달려 나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실제로 밤에 달리고는 했다. 그렇게 심신의 달리기를 하다 보니 그 부정들이 멀어져서일까 내 안에서 작아졌다. 외면이나 도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외면하기도 도망치기도 해 본 사람으로서 그런 개념은 아니다. 나아감. 나아감이라 하는 게 적합하다. 부정도 받아들이되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차근히 하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2026의 부정을 다루는 방법이다. 더 이상 큰 파도가 오지 않길 바라지만... 세상일이 야속하게도 그렇진 않기에 그때를 대비해 평소에도 달리려 한다. 몸과 마음의 달리기로 체력 좀 늘려 놓으면 상황이 닥쳐올 때 보다 쉬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귀 좀 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