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들어간다 푹, 푹, 푹푹
푹, 푹.
마음에 칼이 꽂히면 이런 소리가 날까. 오늘도 무방비인 내 마음에 칼이 날아들어와 꽂힌다. 근 10년이 다되어 간다. 이 칼들은 주기적으로 해적 칼 꽂기 게임처럼 마음이란 통에 박힌다. 해적이 된 나는 그저 박혀 있고 칼이 꽂히자리들 통에서는 피가 주룩, 주룩 흐른다.
부정. 부정에 대해 글을 적었었는데 또 적는다. 그러나 다른 부정이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 모르겠다. 말로 칼을 던지는 사람이 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가차없이 던져댄다. 그마저도 아픈 곳만을 노리며 쑤신다. 그래도 20대 때 초창기에 쑤셔질 때보다는 많이 무뎌져서 그토록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때는 너무 아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 피부 같은 마음의 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20대, 아버지는 중장비를 운영하셨고 나는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을 했다.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한 20대는 서울에 이름 있는 회사를 가도 돈을 많이 받을 수 없을 텐데 지방에 스타트업 회사에 취업한 나는 당연히 작은 돈을 받으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압박이 시작되었다. 사업하는 아버지에 비하면 내가 받는 돈은 돈이 아닌 듯한, 그냥 못마땅한 작은, 쥐똥같은 돈. 언제나 생각해도 몇십 년간 쌓아 올려 만든 탑이랑 오늘 쌓은 벽돌이랑 비교하는게 여간 치사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중한 벽돌은 상관없다. 내가 만족하고 좋아했으니까. 근데 탑이, 실은 불에 타고 있는 탑이 내 집이다. 불안정하게 쌓아 올린 탑은 관리할 사람이 없었고 그 관리자로는 내가 딱이었을 테다.
쥐똥같은 돈을 받으며 만족하고 살고 있는 큰아들. 감언이설과 유혹으로 꼬시기도 했으나 먹히지 않으니 협박과 집, 본인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마침 나도 회사에 환멸 나는 부분이 있어 마지못해 불을 끄기 위해 합류했다. 워매, 힘들었고, 힘들었다.
사정상 그때 타고 있던 불을 끄고 있는지 어언 10년이 다되어간다. 마치 신화 속 꺼지지 않는 불 같다. 그래도 싫은 소리 없이 열심히 했다. 우리 집이고 우린 함께니까. 근데 가끔 술을 드시면 나를 그리도 내려치신다. 지금 이 중장비 일을 안 했으면 넌 별거 아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처음에는 너무 아팠다. 자존감이, 자존감이 무너지는데 눈물샘도 같이 와르르 무너졌었다. 뭐... 글이라 이 정도지만 위 말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기가 막히게 타인이 아플 곳을 아주 날이 잘 서린 말로 잘 찌르시고 가르신다.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후배 깡패들에게 칼질 가르치듯이 상대의 마음이 찔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그래도 실제 신체에 맞는 게 아니라 그런지 근 10년간 맞으니 좀 낫다.
한동안 안찌르시더니 이번 설 명절에 외가 식구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 소리를 하시길래 내 사정을 아는 사촌형과 동생이 무슨 소리냐며 나섰다. 내가 말렸다. 우리 가족 있을 때나 이야기하자고, 그 후 한 달도 안 된 오늘 거래처 차장이랑 셋이 회식하다 그 소리를 또 하신다. 그런 말 하시는 거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오래동안 노력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나를 내리쳐서 뭐가 좋을 게 있다고 그러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건 없이 같이 웃으며 잘 일하고 있는데. 원망도 많이 했으며 분노도 많이 했다.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근데 부정이 무엇인지... 왜 또 부정과 부정이 발음은 같고 의미는 다른지... 사실 같은 녀석들이나 일란성 쌍둥이 같은게 아닐까.. 의심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사랑, 동정, 존중이 스물스물 피어올라 중화시킨다. 이게 천륜이라는 것일까.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내가 기억 못 하던 아기 때 받은 넘치는 사랑이 남아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수도 있을 것같다.
역시 부정을 부정하기는 안 되는 것인가에 도달한다. 사람이 사람일 때 사람이다. 아비 역시 아비가 아비일 때 아비다. 아직 아버지는 아비다. 가끔 칼을 놓아주는 아비. 주변은 가끔 이런 일이 생길 때 같이 칼을 주고받으라 한다. 살면서 쉬운 방법 중 하나다. 눈눈이이.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칼을 맞으면 아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누군가에게 쉬이 상처 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많이 배우게 되어 난 세간에서 말하는 착한, 좋은 사람에 속하는 편이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금단의 내공을 전수받은 마교 고수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나에게 악의를 가져 해하려 한다면 내가 아는 그 고통을 가감 없이 줄 생각이나 소설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아직은 위와 같은 마음에 도달한 사람은 없다.
아, 상처 주며 살고 싶지 않다. 조만간 이야기해보려 한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조금은 긍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지.
'큰 아들, 너는 그때 그 일을 했더라도 멋지게 성공했을 거야, 아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해냈을 거야, 너는 내 아들이니까.'
이렇게 말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러실 위인은 못 되신다. 근데 감사하게도 내가 그럴 수 있는 위인이 된 거 같다.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흥건히 젖은 마음속에서 난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꽃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