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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Oct 06. 2023

구례 읍내 버스는 벨을 누르지 않는다

나같이 서울 촌사람만 벨을 누룬다.

나는 아직 뚜벅이이다.


지방에서 살려면 차가 필수 인것 같긴하다.

화엄사 템플스테이에서 근무하면서 가만히 보면 차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담당 스님은 얼른 차를 사라고 하신다. 할부로 차를 사야 오래 근무하지 하시면서 말이다. 아~~ 스님은 그런 뜻이셨구나.


화엄사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길이 2km가 조금 못된다. 내리막이라고 해도 나에겐 약간은 빠른 걸음으로 가야 2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남들은 뭐라고 해도 나는 이길을 걷는게 좋다. 대부분 손님들이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오시면 이 길을 걸을수 있는 기회가 없어 살짝 아쉽긴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짐을 가지고 2km를 걸어서 올라오는거 힘들수도 있다. 대부분이 나같이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진 않으니 말이다.


버스정류장에 가도 전광판에 다음에 오는 버스가 없다.

서울에서는 매 분마다 오는 버스가 4-5대정도 있고, 노선도 다양하다. 길을 잘 모르는 길치라 나는 3번 4번을 갈아타도 지하철이 좋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한대 온다고 뜨고 다시 없어지기를 반복해서 과연 버스가 오긴오나 싶었다.

그리고 버스가 한대 들어왔다.


"기사님 터미널 가요?"

"네 가요"

그리고 요금을 내려고 하면 내릴때 내라고 하신다.

그러다 보니 뒷문은 왜 달렸는지 모르게 앞문으로 손님들이 내리고 탄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리고 기사님은 손님이 자리에 앉을때까지 기다리신다. 내릴때도 마찬가지이다. 누구하나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는게 없다. 기사님도 느긋하시다. 시골이라 연세가 많은 분들이 이용하시니 그렇고, 바쁘게 운행할 일이 없으니 보통 1시간 2시간에 한대씩 버스가 온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곳은 구례버스터미널이었던 시절, 실은 그곳이 버스의 종점이었다. 다른 정류장에서는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보다 버스를 이용하는 분들은 많지 않았다. 구례에는 5일장이 서는데 나는 날짜를 체크하지 않으니 잘 모르다가 혹 날짜가 겹치는 날 버스를 타면 오늘이 장날이구나 싶은날이 있다.


꽃무늬의 아주아주 화려한 색의 옷을 입으시고, 구레에는 미용실이 하나밖에 없는 것 처럼 같은 스타일의 짧고 뽀글뽀글한 파마를 한 아주 아주 귀여운 할머니들이 버스에 타신다. 특히 지천을 거쳐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마을의 구석에까지 정류장이 있어서 돌아나온다. 삼삼오오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시면 신기하게 다 아시는 분이다. 아무래도 장에 가는게 큰 행사이긴 한 모양이다.


가끔은 5일장 전에 내리시는 분들도 있는데, 신기한건 아무도 벨을 누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 앞 삼거리에서 내려줘요'

'신호등 지나 내려줘요'

'타자마자 xx동네서 내려줘요'

등등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읍내 버스에선 나같은 외지인만 벨을 누룬다.


이곳에서는 몇번버스라는 의미가 없다. 그 동네로 가는 버스는 한대밖에 없어서

화엄사요 하면 끝이다. 하하하


화엄사에서 읍내는 8km 정도 되는 거리라 그리 멀진 않지만,

내가 처음부터 차가 있었다면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정겨운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만히 버스안에서 할머니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그 집에 자식이 몇명이고 어디 살며 무엇을 하는지 다 알수 있다.


요즘도 종종 짐이 없을때는 버스를 2번타고 ktx 기차를 타러 기차역에 간다.

이른 아침에 나가는 적도 있는데, 그때는 다들 할머니들이 정형외과의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시거나 한방병원에 가시는 길인가보다. 버스안에서의 넉두리가 안타까우면서도 어찌보면 도시보다 건강하게 사시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나는 화엄사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친구는 구레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타고 나서 알았다 우리가 탄 버스가 그날의 막차였다는것을... 저녁 7시 반인데 말이다.

도시에서는 퇴근하고 모이면 7시나 7시 반인데, 이곳에서는 다른 시계를 사용하며 사는곳 같다.

웃음이 나면서도 이런 구례가 좋아진다.


나는 약간의 불편함과 제약이 주는 즐거움이 좋다. 장기 여행과 섬에서의 생활이 나를 그리 만든듯하다.

마치 몰디브에서는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이 3-4달 걸려서 온다. 내가 주문한걸 잊어버릴때쯤에 받으니 그리 반가울수 없다. 한국에서는 오늘 주문하면 내일오고, 어떤 마켓은 당일 배송도 된다. 이리 편리한 시스템에서 살지만 반면 당장 필요없는 물건들도 나도 모르게 주문해 구입하게 된다.


p.s. 요즘들어 할머니들 패션을 살펴보는데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다. 옷 스타일은 여전히 화려한 꽃무늬이신데, 신발은 요즘 핫한 브랜드의 신발들도 많이 신고 다니신다. 쿠션도 좋고, 색도 예쁜 운동화들이다. 아무래도 자식들이 사서 보내준듯하다. 언발런스 해보이지만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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