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소통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날 때에는 진지함은 기본이고 이런 진지함 위에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내가 통하는지 혹은 아닌지... 또 오래된 친구이면 그 사람과 내가 과연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내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몸살을 앓곤 했었죠. 한 친구는 이런 저를 소통의 강박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보다 밀접한 인간관계를 원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 누구보다 밀접한 관계를 원했던 사람과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끊기면서 관계와 소통이란 화두는 제 삶에서 풀지 못한 매듭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관계에서 뜻밖의 소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얼룩말 한 쌍이 서로를 보듬으며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고 있다. Serengeti, Tanzania Photo by Sally Oh
지금은 없어진 다음 칼럼니스트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저는 2000년도 포털 다음에 '아줌마의 영화 이야기'란 칼럼을 게재했었습니다. 당시 미국 이민을 준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몇 달을 쉬게 됐을 때 적적함을 달래고 뭔가 저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던 거죠.
무엇보다 이혼을 하고 혼자 딸아이를 데리고 사는 제 현실을 주위 사람에게 속이고, 마치 아닌 듯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웹 세계에서만큼은 보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자기 다짐 같은 것을 했습니다. 익명의 세계에서 만나는 그들은 저를 직접 알지 못할 테니까요...
마치 작은 동굴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야 할 이발사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은 훨씬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 이야기를 녹여냈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개인적이고 신변잡담식의 이야기가 필터 없이 사이버 세상에 올려지는 것 같아 괴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이 참 행복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의 칼럼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시작했던 일에서 분에 넘치는 소통의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참, 인생이란 게 이런 건가요. 제가 그토록 원하던 대상과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아무 기대 없이 우연히 시작한 웹상에서의 소통으로 당시 저는 한국을 떠나기 전 몇 달만큼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오래 만난 친구가 아니어도, 오래 익힌 포도주가 아니어도 저는 세상에서 비슷한 상처를 안고 서로 어루만져주는 한 무리들을, 정말 좋은 벗들을 만났던 것이죠. 푸른샘님, 이상님, 흐름님, 미루나무님, 돌김님, 마스크님, 상대님, 테레사님, 익균님... 당시 제 칼럼 방에서 뛰어난 필력으로 제 글에 댓글들을 달아주시고 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막강한 필력의 문체들을 선보였던 분들입니다.
브런치에 지금까지 올렸던 영화 이야기들은 제가 당시 올렸던 글들을 업데이트해서 다시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19년 만에 제 컴퓨터 폴더에 보관돼있던 글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오늘 7월 1일에 올린 바베트의 만찬을 끝으로 저는 19년 전의 저와 결별하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19년 전의 나를 소환했던 이유는 꼭 건너야 할 제 인생의 한 단락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이제 이 강을 건너 오롯이 저만을 생각하고 저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힐링으로서의 글쓰기는 제게 중요합니다.
힐링으로서의 글쓰기를 하려면 앞으로 보다 더 많은 사유와 성찰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일몰은 이에 아주 적합한 시간들이다. Serengeti, Tanz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