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으로서의 글쓰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대체 가능하지 않은 나를 만드는 것, 평생 학습의 힘!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TV 방송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한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나는 실시간으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볼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고단한 하루하루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맘 편하게 시청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마디로 꽂힌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났다. 이른바 ‘알쓸신잡’. 토크쇼? 여행 프로그램? 성격을 딱 규정지을 순 없지만 출연자 패널이 쏟아내는 맛깔스러운 토크는 지적 수다에 목말라했던 나에게 톡톡히 대리 체험을 제공했다.
‘알쓸신잡’ 시즌 1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확 잡아끌었던 남자. 이렇게 인문학적인 사고와 논리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1회를 시청한 후, 난 정재승이란 세 글자에 푹 빠져 포털 사이트에서 폭풍 검색을 돌렸다. 이미 학문적 성과는 물론 대중적인 과학 전도사로서 유명한 과학자였다. 2009년 다보스 포럼이 선정한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뽑힌 이력 등 그간 내가 알았던 전형적인 이공계 학자와는 다른 인문학적 논리 체계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과학을 설명하는 그의 매력에 퐁당 빠진 것이다.
‘알쓸신잡’이 한국에서 방송된 날이면 난 그날 저녁 어김없이 퇴근을 서둘렀다. 저녁 데이트를 ‘알쓸신잡’과 해야 했으니까… 와인을 한 잔 따라 간단한 식사를 하며 TV를 시청했는데 이럴 때면 마치 내가 그들 4명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에 동참하는 듯한 묘한(?) 설렘으로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뇌 과학자 정재승은 이렇게 내 뇌리 속에 각인됐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 서울 50 플러스 포털에 등록을 하고 캠퍼스에서 강의를 듣던 어느 날, 난 서울 50 플러스가 진행하는 연속 릴레이 강연자로 정재승 교수가 등장하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리곤 미국에서 저녁시간 TV로 ‘알쓸신잡’을 시청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강의만큼은 꼭 신청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청자가 많아서 탈락하면 어떻게 하지?
신청 접수 시작일인 6월 25일 오전 8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끼고 8시까지 기다렸다. 대중 강의에 이렇게 흥분해서 신청 접수를 기다리는 내게, 난 스스로 “흠~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지금 뭐가 돼도 됐겠다”라는 자조 섞인 감정이 밀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8시가 조금 지나고 서울 50 플러스 포털 사이트에서 수강신청 접수 클릭을 눌렀다. 물론 가볍게 성공! 강연일인 7월 10일. 하루 종일 오락가락 비가 왔다. 숨 고르기를 하기 위해 강연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LG U플러스가 밴드 등록을 하면 패셔너블한 천 가방을 증정한단다. OK! Why not? LG U플러스 밴드 등록을 해주고 검은색 천 가방 득템! 서울 50 플러스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오면 얻을 게 많구먼~ 스스로 대견해졌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간단한 이벤트가 실시됐다. 가장 먼 곳에서 온 참석자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다들 저요~ 저요~ 손을 든다. 이 강의를 들으러 세종시에서도 왔단다. 난 누가 나보다 더 먼 곳에서 왔겠나? 여유만만하게 손을 들었다.
당연히 내가 일등이지! 손을 들고 미국 LA에서 왔다고 했더니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지난 3월부터 강의를 듣고 있다고 설명을 했더니 흔쾌히 통과. LG U플러스가 증정하는 묵직한 보조 배터리 또 하나 득템! 어? 오늘 왜 이러지? 평소 이런 행사장에서 공짜 선물 한번 당첨된 적 없던 내가 오늘은 천 가방에 보조 배터리까지 선물 복이 터졌다. 한국으로 돌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강연 시작. 곰돌이 푸 정재승 박사가 통통거리며 걸어 들어온다. 예의 바른 말투로 강당을 꽉 채운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 강연의 주제는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급속하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통합되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수집되고 빅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인간 사회의 발달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존 수동적이고 일차원적인 인간의 노동력으로 해왔던 직업들은 로봇이나 컴퓨터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AI 혹은 알파고의 혁명이라 할 이 획기적인 사회 변화의 물결이 인간의 눈앞에까지 와있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한다.
유럽에서는 4차 산업혁명, 미국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중국에서는 O2O(Online to Offline), 일본에서는 소사이어티 5.0으로 불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를 우리 50 플러스 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지? 정재승 교수의 열변이 이어진다.
귀를 기울여 들어본다. 결론은 내가 그 누구로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콘텐츠를 확보한 평생학습자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과학만 연구하는 학자에게서 나올 수 없는 강연이다. 특히나 이렇게 평생 학습한 지식으로 이 사회의 혁신과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뜻깊은 강연이었다.
질의응답 시간. 한창 자사고 폐지 여부로 학부모들의 관심이 쏠려서인지 과학고를 졸업한 정재승 박사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정재승 박사의 대답에서 난 왜 그가 인문학적 사고를 갖춘 과학자로 거듭났는지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제가 졸업한 경기과학고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곳입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미국 학교의 과학 교과서로 공부를 했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칼 막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토론하고 논리를 배워나갔습니다. 물론 지금 과학고들은 이런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으면 된다고 일갈하는 정재승은 강연 말미, 본인의 인문학적 소양이 학교 커리큘럼에서 나온 것임을 컴잉 아웃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는 현재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임을 그 누구보다 그날 그 자리, 그 강연에 참석했던 수백여 명의 학부모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 50 플러스의 설립의 취지도 이런 거 아니었을까? 화두를 던지고 그 화두를 고민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제 우리 50 플러스들은 앞선 세대가 걸어갔던 길과는 다른 우리만의 미지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머릿속은 환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