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금남로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크리프트 카페 'Full House' 의 인형들. Full House의 대표는 광주에서 바느질하는 남자로 유명하다. Photo by malee
나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도움 없이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를 뼈저리게 겪은 사람 중의 하나다. 아이를 키워줄 만한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기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다른 사람에게 수진이의 양육을 맡겨야했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게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결국 애 엄마의 책임인 것처럼 내 손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필요하지 않은 게 없었고,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늘 나를 기다리는 건 징징거리며 울어대는 수진이와 산더미처럼 쌓인 가사노동이었다.
내가 아이 키우면서 고생하는 걸 본 후배들이 오죽하면 '선배 보면 아이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거, 너무 끔찍해서 결혼하고 싶지 않아' 했을까? 아무리 갓난 아기라 해도 우유는 왜 그렇게 자주 먹는지, 잠이 들 무렵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기본은 세 번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것까지 합하면 거의 여섯 번 정도는 자다가 일어나서 아이를 보살펴주어야 했으니 잠을 잤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게다가 새벽에 불에 덴 듯 이유 없이 울어대는 건 정말 속까지 바싹바싹 타게 하니, 부모가 된다는 게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들던 시절이었다.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그 조그만 생명을 키워나가는 일이 당시의 나에겐 하루하루 지옥 같았다고 하면... 어떨 땐 내가 모성애가 없는 게 아닐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밤을 지새운 후,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서서 졸다가 무릎이 꺾여 나도 모르게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운 좋게 자리에라도 앉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되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또 회사에서는 일하다 말고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아댔으니...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내가 중간 관리자가 돼서 일을 시켜본 후에야 비로소 그때 같이 일하던 나의 직장 상사가 스트레스를 받았겠다는 걸 어렴풋하게 깨닫게 되었다.
몸만 어른이었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 되지 못했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때마다 칠칠치 못한 엄마 때문에 고생을 한 건 바로 수진이었다.
애 아빠는 늘 새벽이나 되어야 귀가를 했으므로, 내가 퇴근을 한 후, 아이를 봐주시던 아주머니가 집으로 가버리면 나는 밤 시간 동안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내게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 수진이가 조금만 앵앵거려도 겁이 덜컥 났고, 열이 조금만 나도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렸다. 하루하루 살얼음을 딛듯, 아이를 조심스럽게 보던 중, 마침내 수진이가 석 달 되던 달,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날 새벽에도 예외 없이 꼬박거리고 졸면서 우유를 먹이다가 아마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앵앵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수진이가 우유도 다 먹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 다시 깨어났는지 우유병에 우유가 그냥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우유병을 수진이 입에 물려 우유를 다 먹이고는 트림까지 시킨 건 좋았는데... 시간을 보니 맨 처음 우유를 먹이려고 입에 물린 때로부터 두어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우유병을 들고 앉은 채로 두 시간을 졸았던 것이다. 후끈거리는 실내 온도 때문에 우유의 맛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느라고 약간 맛이 변한 우유를 준 못난 엄마의 실수로 수진이는 장염에 걸리게 되었다. 그때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에서 땀이 날 정도인데, 밤새도록 배가 아파 몸을 비틀어대던 석 달된 갓난아기를 어쩌지 못하고 울어대던 내 모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