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대신 참외를 먹을게요

싱글맘의 육아일기-7

by malee

수진이를 놀이방에 보내던 첫날, 나는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보다 더 기뻤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부담해야 했던 살인적인 탁아비가 현저하게 저렴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진이가 놀이방에서 적응은 잘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워낙 태어나서 남의 손에서만 자랐던 아이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때에는 아침 일찍 놀이방으로 출근을(?) 하는 수진이가 가련해서 마음이 참 안쓰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풍족하게 살림만 하면서 살아갈 처지가 아닌, 엄마의 앞날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수진이는 기막히게도 이런 다른 사람의 탁아에 적응을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진이는 태어나서 줄곧 남의 손에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엄마가 회사에 나가는 사람이라는 데에 한 번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놀이방에 가면서부터는 조금씩 이 세상에 자신과 다르게 사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 가는 눈치였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오전에만 놀이방을 다니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오전반과 점심 식사 후에도 계속 이곳에 남아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종일반으로 놀이방은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


수진이는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오전반 친구들이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한 번은 수진이와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평소 수진이는 멜론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이날도 어김없이 멜론을 사려는데 그날따라 한사코 멜론을 안 사겠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대신 참외를 사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참외 몇 개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 나는 '수진이가 오늘 웬일이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아이들은 변덕이 원래 심하니까' 하며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놀이방에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수진이를 깨워 식탁에 앉혔다. 수진이는 입이 잔뜩 나와서는 '엄마, 나 이제 멜론 안 먹고 참외 먹을 테니까 나도 놀이방에서 오전반만 하면 안 될까?' '멜론 안 사달라고 할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진이가 가여운 생각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아니, 참외보다 멜론이 더 비싸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게다가 참외와 멜론이 비슷한 과(科)라는 건 또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는 비싼 과일을 안 먹고 그냥 그 비슷한 참외만 먹을 테니 놀이방에 자신도 오전반만 다니고 싶다는 수진이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줄 처지가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참 난감할 수밖에...


수진이가 이 놀이방에 다닐 때, 애 아빠와 나는 이혼을 했다. 수진이가 아침에 놀이방에 가고 난 후, 애 아빠는 후배와 같이 와서 짐을 싸 가지고 나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아빠의 옷걸이를 바라보던 수진이의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빠의 옷걸이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 옷이 다 어디로 갔어?' 물어보던 수진이의 눈빛을...


photo credit : www.americanspcc.org

나 역시 목메는 소리로 '응! 아빠가 엄마하고 사는 게 싫다고 해서 나가 살기로 했어' 그날 저녁 우리 모녀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해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놀이방에서 보내온 선생님의 편지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요즘 수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놀이방에 와서 통 말이 없습니다. 힘도 없는 것 같고요. 어머님이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동봉한 편지에는 놀이방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의 수진이는 아무 표정 없이 우울하게 앉아 있었다. 사진 밑의 날짜를 보았더니 애 아빠가 집을 나간 다음 날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 일은 놀이방의 담임 선생님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짤막한 편지를 선생님 앞으로 적어 수진이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선생님이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적어 보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답장을 받은 후, 나와 수진이 반의 선생님은 놀이방과 집에서의 수진이 상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일단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인지, 현저하게 식욕이 줄은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말수도 적어지고... 하지만 나에게만은 전보다 훨씬 밀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아빠가 나간 후,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엄마에게 더 집착을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수진이는 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주었다.


지금 수진이의 웃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매일 엄마와 싸우고 새벽에나 들어왔던 아빠... 하루에 기껏해야 아침나절 한 20분 정도 보는 게 고작이었다 해도, 하여간 아빠라는 존재가 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난 후의 흔적을 바라보던 저 어린아이의 시선은 수진이의 인생에 두고두고 내가 짊어져야 할 채무인 동시에 앞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삶의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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