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슬퍼 보이는 아이

싱글맘의 육아일기-1

by malee

애 아빠와 나는 이혼한 지 만 3년이 되었다. 이혼할 당시 나는 '내게 미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처럼 '모든 건 세월이 해결해준다'더니 세월은 모든 상처를 덮어 다시 그 속에서 새싹을 움트게 하여, 기어이 여린 새순을 흙 위로 고개 내밀게 한다.


하지만 이혼을 한 후, 내 삶의 자양분은 세월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내 딸아이, 수진이... 예전 '70년대에 한참 유행했던 David Buen의 'You light up my life'처럼 정말 내 삶의 등불은 이제 일곱 살배기 조그만 여자 아이였다.


딸애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굳이 알게 될 것을 감추고 싶지 않았고 아이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면 정직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진이가 4살 때 이혼을 했으니까.... 사실 수진이는 아빠와 함께 살았던 우리들의 가정생활에 대해 잘 기억을 못 한다.


다만 기억하는 것이라곤 엄마와 아빠가 늘 싸웠으며, 아빠는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아빠와 싸운 엄마가, 소파에서 잘 때 수진이가 이불을 갖고 와서 덮어주었다는 기억을 해내며, 나에게 '맞지, 그렇지, 엄마...' 하면서 확인을 요구하곤 한다.


나는 아이가 이런 과거를 기억해낼 때마다 '혹시 내가 그런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들을 한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곤 한다. 하지만 이혼한 후, 나 역시 그와의 가정생활은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굳이 아이에게 그런 세세한 일들은 말하지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딸애가 이런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엄마로서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저려 왔다. 심지어 딸애는 그 또래의 다른 여자애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웃을 뿐인데도 그 웃음을 듣는 나의 마음은 괜히 그 웃음 뒤에 그늘이 느껴져, 혹시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무슨 상처 받은 일은 없는지 마음을 졸이곤 했었다.


어느 날인가... 수진이가 유치원의 단짝 친구라며 지은이라는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아왔다. 그 편지에는 '수진이는 눈이 슬퍼 보인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수진이가 아빠의 정을 제대로 받지 못해 남에게, 그것도 어린 친구에게 그렇게 보이는 걸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이혼을 한 내 처지가 비관되어 괜히 후회되고, 나를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모자란 걸까?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쇼핑을 하는 부부들을 보거나, 외식을 하러 음식점에 가면, 이런 생각에 나는 자꾸 왜소해졌다.


부부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이단자인 것 같은 느낌... 나는 이 느낌을 더 이상 견뎌내기가 싫었다. 게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아이마저 이제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이런 자의식 때문에 난 결국 이 땅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지금 나는 딸아이와 함께 엄마와 친정 식구들이 있는 이곳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이가 교육을 받기에 확실히 한국보다는 미국이 좋겠다 라는 생각에 건너온 것이다. 이곳에서 수진이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등록을 해놓고 이곳의 1학기인 가을 학기가 시작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역시 아이는 스펀지 같다더니 하루가 다르게 수진이의 영어 는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아이와 달리 나는 지금까지 내 삶의 터전이었던 그 땅을 버리고 이곳에 정착한 나의 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다시 몇 년이 지난 후, 후회가 된다면... 정말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가지의 사지선다형 문제를 놓고 짝짓기를 해본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내 30대가 지나기 전, 몇 년만이라도 가부장제가 나를 숨쉬기 곤란하게 만드는 한국이라는 곳과 아직도 자신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서 빗겨 나, 나를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옆으로 좀 한 걸음 벗어나 나를 보면 나의 모습이... 그리고 내 생각이 좀 확실하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의 변명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0년에 쓴 것입니다. 저는 19년 전 고국인 이 땅을 떠나 미국을 떠돌다 최근 다시 귀국했습니다. 오랜 방황과 가슴앓이 끝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을 때... 전 온전히 저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7살에 데리고 나갔던 딸아이는 26살이 돼서 성년이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엄마의 자의적인 선택으로 살게 된 미국 땅을 많이 불편해합니다. 싱글맘의 딸로 타인의 시선을 받게 하기 싫다는 당시의 제 선택이 잘못이었나? 이런저런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죠...


아직 우리 사회에는 싱글맘, 싱글대디, 재혼가정,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있지만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싱글맘으로서 딸아이를 키우고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을 풀어내는 일은 제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꼭 건너야 할 제 인생의 한 단락이기도 합니다. 전 이제 이 강을 건너 오롯이 저만을 생각하고 저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힐링으로서의 글쓰기는 제게 중요합니다.


저의 상처를 드러내 부드러운 바람에, 따사한 햇볕에 말려 꾸들꾸들해질 때쯤 제가 겹겹이 싸매 놓았던 상처의 아픔도 비로소 아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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