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2
수진이는 아빠와 함께 살았던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한 4년 동안, 부부 사이가 가장 나빴고, 애 아빠는 집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에 대해 친밀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수진이는 아빠와 용인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 함께 놀러갔던 일들을 기억 못 한다. 물론 너무 어려서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기억을 해내곤 하는데, 예를 들면 일요일에 아빠가 외출하면서 수진이에게 새우깡을 사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새우깡을 사 오지 않고 새벽에 들어왔다는 말을 종종 해서, 내 마음을 후벼 파 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수진이의 머릿속에서 아빠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진이를 내가 기르기로 하고 이혼을 한 후, 나는 애 아빠가 딸애를 만나겠다고 하면 '너는 아빠 될 자격이 없다'며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었다. 이혼을 하고 나서도 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극에 달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 결국 한 가정을 해체시켜버린, 그에 대한 풀릴 수 없는 미움이 온통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소에 수진이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렇게 아이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모든 걸 '나 몰라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혼을 한 후, 수진이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렇게 주장할 권리가 그에게 있었던가? 가정은 어떻게 되든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하던 사람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아이의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고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아이에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아침에 놀이방에 간 후, 짐을 꾸려 나간 아빠를 보지 못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때 수진이는 처음으로 아빠를 만나고 돌아왔다. 애 아빠와 나는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후에 애 아빠가 수진이가 다니는 놀이방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간 후, 일요일 오후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합의를 했다. 아빠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만난 뒤 헤어져야 할 시간... 수진이는 아빠의 차에서 내리면서 눈물에 콧물에 서럽게 울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나와 애 아빠도 눈물을 흘리며 울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다시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했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메워질 수 없게 이미 벌어져 있었고 나는 애 아빠가 드러낸 밑바닥을 보고난 후 이미 인간으로서의 신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애 아빠는 그냥 참고 살지... 뭐 이렇게 이혼까지 해서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나, 나에게 독기를 품고 있었다.
수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한글을 깨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있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컴퓨터의 한글 자판을 익히고 싶어 했다. 연습 삼아 한 자, 두 자... 이렇게 시작한 수진이의 편지 쓰기는 자연스럽게 e-mail로 이어졌는데... 수신인은 바로 아빠였다. 수진이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메일을 발송해버리곤 했는데, 이렇게 보낸 자신의 편지가 보낸 편지 보관함에 보관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다. 이 편지들을 몰래 읽으며 나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수진이가 애처로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글쓴이의 변명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0년에 쓴 것입니다. 저는 19년 전 고국인 이 땅을 떠나 미국을 떠돌다 최근 다시 귀국했습니다. 오랜 방황과 가슴앓이 끝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을 때... 전 온전히 저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7살에 데리고 나갔던 딸아이는 26살이 돼서 성년이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엄마의 자의적인 선택으로 살게 된 미국 땅을 많이 불편해합니다. 싱글맘의 딸로 타인의 시선을 받게 하기 싫다는 당시의 제 선택이 잘못이었나? 이런저런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죠...
아직 우리 사회에는 싱글맘, 싱글대디, 재혼가정,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있지만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싱글맘으로서 딸아이를 키우고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을 풀어내는 일은 제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꼭 건너야 할 제 인생의 한 단락이기도 합니다. 전 이제 이 강을 건너 오롯이 저만을 생각하고 저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힐링으로서의 글쓰기는 제게 중요합니다.
저의 상처를 드러내 부드러운 바람에, 따사한 햇볕에 말려 꾸들꾸들해질 때쯤 제가 겹겹이 싸매 놓았던 상처의 아픔도 비로소 아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