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22
예전에 수진이와 나는 채널 아일랜드라는 섬에 다녀왔다.
채널 아일랜드는 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해양 국립공원으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군도다. 스킨 스쿠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곳에서의 잠수를 꿈 꿀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다.
회사에서의 채널 아일랜드 탐방을 취재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굳이 딸아이와의 동행을 우겨서 함께 배에 올랐다. 미국에 와서 어디 데리고 여행도 시켜주지 못했는데 이런 기회에라도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른 아침 도착한 옥스나드항은 작은 소항구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항구에는 나지막하게 안개가 깔려 있었고 냉기 머금은 습기엔 바닷바람이 섞여 쌀쌀함이 느껴졌다. 칠부바지만을 입혀 데리고 온 수진이는 춥다고 아우성이고… 나라는 엄마는 늘 아이와 어딘가 멀리 떠날 때면 제대로 옷 하나 챙겨주지 못해 애를 고생시킨다.
태평양의 출렁이는 물결을 가르며 내려 쬐는 햇살 대신 촉촉한 안개를 감미롭게 즐긴 끝에 채널 아일랜드의 한 군도인 애나카파섬이 마침내 우리 앞에 그 자태를 드러냈다. 절벽에 배를 대기 위해 만들어놓은 접안시설은 그동안 내가 흔히 보았던 부두가 아니었다. 해안 절벽에 사다리를 놓고 배를 사다리에 붙여 한 명 한 명 오르도록 해놓은 것으로 보아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이겠다는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절벽에 놓인 철제 계단을 올라가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산란기를 맞아 여기저기 알을 품고 있는 갈매기들.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란 듯, 알을 품고 있던 어미 갈매기가 본능적으로 요란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수진이는 갈매기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이 신기한 듯 계속 갈매기의 주위를 맴돌며 ‘왜 갈매기가 알을 품는지, 정말 그 안에서 갈매기 새끼가 나오는지…’ 꼬치꼬치 물어댔다.
수진이는 배가 고프다며 뚝딱 도시락 하나를 해치우고는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점심에 이은 애나카파섬 답사길… 길게 한 줄로 서서 좁게 난 섬길을 따라 걸으며 캘리포니아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희귀한 식물들과 야생화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갈매기 똥을 밟으며 낄낄대던 수진이는 취재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엄마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잘도 답사 줄을 따라가며 놀고 있었다. 마침내 섬의 절반을 돌아보았을 때, 애나카파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세 개의 섬이 일렬로 늘어선 포인트를 만났다.
산타바바라에 거주하던 츄마시 인디언 부족들이 뗏목으로 본토를 갈 때면 이곳을 중간 경유지로 거쳐갔다는 가이드의 설명처럼 애나카파섬은 채널 아일랜드와 본토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할만한 교두보 자리에 있었다.
답사를 끝내고 돌아 나오는 길,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른 수진이는 배낭에, 허리에 두른 옷에 낑낑대더니만 ‘우리도 아빠와 함께 왔으면 아빠가 다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그지 엄마?’ 하며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수진이는 이렇게 사소한 일에 아빠의 부재를 기억해내곤 해서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다시 배를 타고 나오면서 바다사자들이 모여있는 해안 절벽을 둘러보았다. 바다사자를 본 수진이는 뱃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가며 ‘엄마, 바다사자야!’ 환성을 질러댔다. 바닷가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일광욕을 하는 바다사자들… 그들은 동물원에서 만나는 관용 동물이 아닌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자연 그대로의 건강함을 내뿜고 있었다.
옥스나드 항구로 되돌아오는 도중 배의 갑판에서 수진이와 나는 두 발을 뻗고 편하게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수진이 머리 위로 갈매기와 펠리컨 새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엄마, 나 너무 재미있어’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수진이의 웃는 모습을 보자 일주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피곤이 정말 나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야근으로 몸이 아픈 것도, 집안에 생긴 일들 때문에 극도로 짜증이 났던 것도 모두 사라지고 수진이와 나는 갑판에서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며 신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단 하루라는 짧은 일정, 취재를 빙자했지만 여행은 여행이었다. 수진이와 함께 한 자연으로의 여행, 일상을 되돌아보고 사색하며 일상으로부터 잠시 멀어져 나를 돌아본다. 늘 힘들다고 불평만 했지 힘든 일상 뒤에 이런 작은 즐거움을 누릴 줄 몰랐다.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원시의 생명력과 순수함을 맘껏 흡입하고 도시로 돌아와 삶의 활력을 다시 찾게 해 준 짧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