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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Apr 18. 2020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본
'부부의 세계'

글로 읽는 영화

▶작품 연도  1995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메릴 스트립 ▶주요 수상 경력  1995년 오스카 주요 부문 6개 노미네이트 


요즘 한국 주부들이 최애 한다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불륜 연기 전문 배우라는 칭호까지 얻을 정도로 의사, 음악가 등 고스펙 불륜녀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던 김희애가 이번에는 남편의 불륜으로 고통받는 조강지처 연기로 또 한 번 주부들의 시선을 흔들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중년 여성들에게 '불륜'이라는 단어로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던 원조는 바로 이 영화 아닐까 싶은데요. 


너무나 단아해 불륜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조용조용 속삭이던 그 영화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 영화를 감상한 지도 벌써 25년이 됐습니다. 사실 간통죄까지 폐지된 마당이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대미문의 불륜들이 우리 주위에 넘실댑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침없고 솔직한 불륜들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이제 정치적인 은유는 물론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나무란다'는 뜻으로 청소년들까지도 사용하는 일반 대중 어가 됐습니다.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 가곡을 듣는 지적이고 단아한 가정주부, 메릴 스트립(프란체스카)은 아내의 취향은 전혀 모른 채 큰 소리로 떠들고 문을 쾅쾅 닫아 아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엄마가 이탈리아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자녀들은 요즘 유행하는 팝송으로 재빨리 바꿔버리죠.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은 서로 나눌 이야기도 없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침묵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가족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그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부속품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에 찌들어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어느 날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바깥세상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을 동경하게 해주는 그런 남자가 불현듯 나타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로버트는 낡은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메디슨 카운티의 작은 마을, 아니 프란체스카의 인생으로 픽업트럭을 몰고 들어옵니다. Photo IMDB

배경은 1965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메디슨 카운티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조만간 철거될 이 마을의 명물인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이 곳으로 트럭을 몰고 옵니다. 낡은 청바지에 셔츠, 니콘 카메라를 메고 프란체스카가 동경하는 세상의 냄새를 풍기며 조근 거리는 목소리로 물어오죠. 로즈먼 다리가 어디 있냐고?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지구를 사랑하는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지만 이 잡지는 지구의 자연을 보호하고 현대화로 사라지고 있는 옛것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놓는 전통의 잡지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격조 높은 잡지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진을 처음으로 찍은 것도 바로 이 잡지였다고 하네요. 그러니 전 세계를 다니며 오지와 천혜의 자연을 촬영하는 로버트라는 사진작가의 영혼이 얼마나 깊고 넓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가 길을 찾다 프란체스카에게 길을 묻게 되죠.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나흘 동안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 집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결혼 이후 처음 가족과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길을 묻는 그 순간에도 가족들의 빨래를 널고 있었죠.


결혼한 지 15년이 넘어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한 남자와 자식만을 위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온 세계의 풍물과 삶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는 로버트의 인생은 동경 그 자체였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 로버트가 부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그와의 대화는 익숙하다 못해 더 이상은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편과의 대화와는 차원이 다른 문학과 여행, 음악과 미술… 그 자체로서 너무나 환상적인 감정이입을 공유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이 떨릴 듯 화면에 전해지던 장면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저녁에 초대해서 함께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죠.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감자 스튜를 만들어주기 위해 부산스럽습니다. 감자는 미국 중부를 상징하는 아이오와주의 대표적인 농산물이죠. 


프란체스카의 부산스러움을 느낀 로버트는 “제가 도와드릴까요” 란 말로 그녀의 맘을 빼앗아 버립니다. 너무나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의 생활에 익숙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요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깜짝 놀랍니다. “요리를요?” “예… 요리를” “당근을 깎아주세요” “이거 말인가요” “예… 끝은 이렇게 다듬어야 해요”

사랑에 빠진 여인의 눈길은 어떠할까요? 지금 이 장면을 보신다면 '바로 이렇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메릴 스트립의 리즈 시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Photo IMDB

짧은 단답식의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죠. 

낯선 두 남녀가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세계를 향해 들어오는 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부엌에서 함께 채소를 손질하고 감자 스튜를 저으며 그렇게 완성해갑니다. 


전 사랑이 결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스튜처럼 오래 끓이면서 뭉근히 재료의 맛을 우려내고 깊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죠.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다고 해도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서 뒤늦은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제자리에 주저앉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운명적인 사랑을 따라 지금까지 가꿔왔던 자신의 세상을 박차고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리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순서가 잘못 돼 '만났어야 할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 인생을 살고 있기보다는 '스치고 지나갔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착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믿으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됩니다. 


이렇게 착각으로 쌓아 올린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은 탈출하기도, 부숴버리기도 모두 어렵게 쇠창살로 창문을 막고 우리에게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기를 요구합니다. 착각이 우리의 눈을 가려버려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면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사랑이라 믿었던 결혼이라는 성안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쌓고 그 일상은 모여져 삶의 결로 퇴적됩니다. 이렇게 퇴적된 내 인생의 결은 어느새 작은 봉우리가 되고 제법 봉긋한 작은 산 하나 만들어 인생 고갯길을 구비구비 넘어가게 돼겠죠. 


그나마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면 이걸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길'이라 생각하고 만족하고 안주하게 되겠지만... 또 우리가 흔히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는 그런 개차반 같은 인생(현실에서는 더 개차반 같은 인간들도 아주 많더군요)들은 또 한 순간 충동적인 욕구에 빠져 쾌락을 탐하고 육체를 옭아매며 상대 파트너의 시간을 다 가지려는 듯 집착하고 다그치며 결국엔 폭력까지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런 만남은 불륜이지 사랑은 아니겠죠? 


전 오래전 이 영화를 보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중년의 감성은 아니었기에... ㅎㅎ 감정이입을 100% 못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육체적인 관계의 선을 넘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선' 말이죠. 

사진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장면. 뒤로 로즈먼 다리가 정면으로 보인다. Photo IMDB


이 영화에서 이들 중년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뭔가 육체적 탐닉으로 흔히 사용되는 '불륜'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너무나 단아했기에 안타까웠고 서로의 교감은 깊었지만 스치는 손길은 가볍기 그지없었습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며칠간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대화하며 깊은 울림을 동시에 느낍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흔히 남녀들이 하는 것처럼 세속에서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간절함을 뒤로하고 프란체스카는 이 작은 마을에 남아 가정을 지키고 자녀에게 헌신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프란체스카에게 도착한 로버트의 유품은 로버트가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이 표지로 담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니콘 카메라,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남긴 다리 위의 쪽지였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이 유품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깁니다. 살아온 인생은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니 죽은 뒤에는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에 뿌려달라는 말로 로버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하기 위해 다시 손을 보고 있습니다. 

영화도 연령대에 따라 감상했을 때 차이가 나는 것처럼 예전에 써놓았던 글도 맛의 차이가 납니다.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죽은 후, 가족묘지 대신 화장을 해서 다리 위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말의 뜻이 이제 정확하게 이해됩니다.  


그 당시에는 크게 의미를 주지 않았던 장면인데 이제와 생각하니  프란체스카는 가부장적인 가족의 굴레에 죽어서까지 매여있기 싫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처럼 저도 죽으면 화장해서 가루를 태평양에 뿌려달라고 딸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바다를 떠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겠네... 이런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참나...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아마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은 다음 생에 이뤄질 것입니다.


사랑은 다 가질 수 없어 더 안타깝고 서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 

과연 오늘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감자 스튜 같은 뭉근한 사랑인지 아니면 프라이 팬에 와인을 부으면 불같이 일어났다가 금세 스러지는 불꽃같은 그런 육체적인 사랑인지 한 번쯤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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