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밟기

by 말글손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2동 2026 병오년 동신제와 지신밟기가 조금 일찍.....

모두가 즐거운!!


지신밟기


주민이 직접 만드는 거대한 복지 시스템이자 공동체 정신

‘마음 지신’을 밟아 이웃의 마음을 다독이는 연대의 힘으로


거친 땅의 기운을 누르면, 그 틈바구니에서 사람 냄새가 피어난다. 땅은 본래 야생의 것이다. 날선 자연의 기운을 사람의 온기로 다스리고, 발바닥으로 단단히 다져 평평하게 만들어야만 비로소 집을 짓고 삶을 꾸릴 수 있다. 정월대보름 즈음에 들려오던 꽹과리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차가운 대지를 깨우고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는, 뜨겁고도 신명 나는 ‘생명의 몸짓’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네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신제(洞神祭)를 지내고 지신밟기를 했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아래서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고, 풍물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땅을 밟았다. 상쇠가 꽹과리를 두드리며 “어허이루 지신아” 하고 노래하면, 집주인과 이웃들은 한목소리로 “좋~다!”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정성을 다해 내는 쌀 한 됫박과 따뜻한 덕담에 마을은 사람 사는 향기로 가득 찼다.

그 시절 지신밟기는 단순한 미신이나 의례가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움직이는 거대한 ‘복지 시스템’이자 ‘공동체 확인 의식’이었다. 꽹과리와 징 소리를 앞세워 서로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날이었다. 겨우내 별일은 없었는지, 쌀독은 비지 않았는지 서로의 살림살이를 따스하게 살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당을 밟아대는 발길질 속에 너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는 ‘우리’라는 단단한 마당이 생겨났다. 액운은 밟아 없애고 복은 불러들인다는 믿음. 서로가 서로에게 복(福)이 되어주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 정겨운 풍경은 박제된 민속놀이로 전락하고 있다. 아파트라는 수직의 공간으로 ‘마당’은 사라졌고, 콘크리트 바닥이 우리 발밑을 채웠다. 사람 사는 소리는 층간 소음이나 민원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액운을 막기 위해 이웃의 손을 잡는 대신, 각자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보안 시스템에 의존한다. 지신(地神)을 누를 땅도, 함께 어깨동무할 이웃도 희미해진 시대. 편리함을 얻은 대신, 서로의 체온으로 빚어내던 ‘사람 냄새’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신밟기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현대의 지신밟기는 꽹과리를 치며 아파트 복도를 도는 것이 아닐 테다. 그것은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의 땅을 밟아 온기를 나누는 일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서로의 ‘마음 지신’을 밟아주어야 한다. 현대의 지신밟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여야 한다. 소외된 이웃이 없는지 살피는 눈길이어야 하고,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십시일반 마음을 모으는 손길이어야 한다. 과거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쌀을 모아 마을의 공동 기금을 마련했듯, 우리는 나눔과 연대로 사회의 안전망을 촘촘히 다져야 한다.

땅은 밟을수록 단단해진다. 푸석푸석해진 우리 사회의 신뢰도, 양극화로 갈라진 계층 간의 틈도 우리가 함께 발을 구를 때 메워질 수 있다.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욕망의 시대라지만, 대나무가 속을 비우고 마디를 맺으며 하늘로 솟듯, 우리도 욕심을 비우고 연대의 마디를 맺으며 땅을 딛고서야 한다.

정월대보름 달빛 아래, 힘차게 발을 굴러본다. “우환과 갈등은 물러가고, 상생과 평화는 이리로!” 내가 먼저 이웃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 씩씩한 발걸음들이 모여 경남의 아침은 비로소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봄을 맞이할 것이다. 지신을 밟아, 다시 ‘우리’를 세우자.

https://youtu.be/RTNVN9-fASI?si=opxQfm0bIp237Q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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