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을 두 번 사는 방법은 글을 남기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역사라 하지만, 2017년 3월 10일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날이 되었고, 국가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진일보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날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오전을 흐릿하게 아내와 좋지 않은 대화로 시작하여 꿀꿀한 마음이 아침을 잡아먹었다. 1인창조기업에 가서 출근부 도장을 찍고, 잠시 어디로 향할 지 고민하다 집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아내와 언성을 높이며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가다 휴전인지 종전인지 모르게 그렇게 말을 끝내 버렸다. 진실은 묻히지 않는 법인데, 진실은 꼭 드러나는 법인데, 쓸데없는 상상이 자꾸만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왜 우리 사이에 타인이 끼어드는 지 모르겠다. 나는 그게 싫었을 뿐이다.
그렇게 제사 음식을 준비하다, 국가적인 사인이 궁금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일이기에 타국의 누군가는 관심이 없을지 모른다. 때론 우리 국민이라도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일은 두고두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틀림없다. 모든 국민이 기뻐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그러했으리라. 어떤 조직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표현이 과할 수도, 조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은 대부분이 그러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세상 아닌가?
시청 취재를 다녀왔고, 문화예술진흥원 설명회를 위해 도청에 다녀왔다. 세상은 아직 어떻게 변할 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세상은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언제나 존재한다. 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는 갑과 을이 없으나, 일 사이에는 갑과 을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 사이에는 갑과 을이 없고, 일 사이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나, 우리는 사람 사이에 갑과 을을 개입시키며, 일 사이에는 갑과 을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런가? 사람이 그런가? 일이 그런가?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시계와 시간은 묘하게 어울리는 점이 많다. 아니 시간의 개념을 시계로 잡아낸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시간을 하루 24시간으로 나눠 표시한 최초의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배꼽시계에 의존해 밥을 먹던 어린 시절이 기억났다.
"엄마, 배가 고파. 집에 가자."
"그래, 열 두시쯤 되겠네. 우리 석이 배고프면."
논두렁에 앉아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 가진 것은 많이 없었지만, 엄마와 함께 논과 밭을 오가며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배꼽 시계의 정확성을 확인하기도 했던 그 시절.
도시 생활에 젖어들며 시간 개념을 잊고 살았다.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으며, 실내에 앉아서는 해의 이동도 알 수 없으며, 시계가 없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알 지 못하는 그런 도시 생활. 시골에서는 눈을 뜨면 아침이고, 해가 뜨면 눈을 감았다. 전자기기가 없었기에 저녁 먹고 나면 금새 잠에 들었고, 여명이 동녘 하늘을 적실 때 눈이 뜨지니 시간은 자연과 함께 흘러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도시는 자연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시간이 적용되는 세상이다.
그런 시간을 늘 기록하면서 바쁘게 살아가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아마 같은 시간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되는 방법은 시간을 두 번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있다면 글을 쓰는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