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48시간

헤어스타일이 인상에 미치는 영향

이발하러 갔다가 미용실은 정보의 공유공간임을 깨달으며 또 다른 짓을 한다

by 말글손

머리칼을 길러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기르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들며, 귀찮음까지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잊고 살았다. 그래도 긴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또는 꼭 묶어 뭔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머리카락을 기르는 데 드는 시간, 노력 그리고 귀찮음 때문에 미용실로 향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차를 한 곳이 미용실 앞 골목이었다.


(참고로 아래 사진을 뒤지면서 옛 추억에 잠시 빠지는 행복을 누렸네요. 생긴 건 뭐 그냥 그렇지만, 헤어스타일에 집중해 주세요. 저는 참 머리카락이 늘 그 모습이란 생각입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사진은 원본 그대로니 좀 보기 그렇더라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20141004_110644.jpg 한 3년 전 쯤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외상으로 이발 됩니까?"

"그럼 되지. 세상에 안되는게 어딨어"

구수한 전라도 말을 쓰는 누님이 반겨줍니다.

"좀만 기다리랑께. 커피 한 잔 하고. 삼촌도 커피 한 잔 혀."


요즘은 미용실 이발 가격이 너무 비싸지만, 제가 다니는 동네 미용실은 남자 이발하는 데 8,000원입니다. 저는 이발은 시간이 맞으면 문 열고 들어가서 한다. 손님이 한 분 이상 계시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나오는 게 태반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맨날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사는 듯 하다. 오늘도 어르신 한 분이 염색을 하시느라 앉아 계셨고, 10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하길래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20141021_111739.jpg 대학교 1학년 때 쯤인가 기억도 가물합니다.

"좀 짧게 깍을까예?"

"뭐 헐러고? 삼촌은 좀 긴게 낫겠거먼."

"아, 기를려니 귀찮고 해서."

"여름 되면 깍어."

"그럼 깍지 말까예?"

"깍아야제. 앞머리가 길구마이."

역시 누님도 장사는 잘 하신다. 늘 붐비는 미용실이 오늘따라 다소 한가하다. 이발 한 번 하려면 서너번은 찾아가야 빈 시간을 찾을 수 있는데, 오늘은 운이 좋다고 해야겠다.

20141225_171158.jpg 이 사진은 한 4년 정도 되었나?

잠시 자리를 지키다, 곧장 의자에 앉았다.

"삼촌, 앉아봐."

"좀 짧게 깍아 주이소."

"여기서 골라봐. 남자는 헤어스타일이여. 스타일이 멋져야제. 삼촌은 머리가 길면 좀 점잖애 보이고, 짧으면 시원하제."

"그라모 오늘 안 깍아야겠네예."

"이발은 하고.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누님의 웃음은 언제나 즐겁다. 머리카락이 기니 이마도 답답하고,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일도 예사가 아니다. 예전처럼 빡빡 밀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 강의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입장에서 혐오감을 줄 수는 없어 참았다. 학원만 할 때는 하루만 참으면 모든 것이 지나갔지만, 이제는 이런저런 일로 사람 만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사실이다.


20150418_175729.jpg 벌써 2년 전이네

"모히칸 머리로 할랑가? 좀 전에 삼촌 한 명 깍고 갔는데 딱 봤어야 하는데. 하하하하."

"모히칸은 좀 우습지 않은겨?"

"남자들 모히칸 해 놓으면 멋지제."

그렇게 시작된 이발은 이런 저런 이야기와 누님의 혼잣말로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이 싹둑싹둑 잘려 나갔다.

20150502_094845.jpg 이것도 2년 전입니다.

한참 동안 깍고 있는데 동네 어머님들이 하나 둘 미용실로 들어선다.

"아따, 언니는 오랜만이여. 어제 보이 자전거 타고 가시더만."

"내가? 요새 팔이 아파서 자건거 못 타."

"언니 아녀? 팔은 왜 그런데?"

"내 얼마 전에 수술했다아이가."

"일하다 그랬는가? 열심히 일하다보면 그럴수도 있제."

"그럼 놀다가 그랬을까? 일하다가 그랬지. 이리 바쁜 사람도 멀쩡한데."

"나야 무거운 거 안들고 그랑께 그렇제."

두 누님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이러다 언제 머리를 다 깍을 지 걱정이 태산이다.

20150619_114650.jpg 3년 전 여름 즈음

어느 정도 이발이 되고, 앞머리가 조금 길었다.

"앞머리가 좀 긴거 아이요?"

"아따, 삼촌. 머리도 천천히 하나씩 단계를 밟으면서 깍아야제. 한 번에 푹 깍아삐모 되겠는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는가? 한 번에 확 해버리는 일이."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정말 그렇다.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그리고 세상만사 그렇게 조금씩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한 번에 뭔가를 노린다면 그건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20150801_170436.jpg 머리카락이 안보이니 차라리 판단하기가 낫다

"00 언니는 남편이 참 잘해주는 갑제?"

누님의 말에 어머님도 가세한다.

"맨날 쓰레기도 치워주고 억수로 잘하제."

"근데 그 언니는 왜 맨날 남편을 뭐라한데?"

"잘해주면 자꾸 더 바라는 게 사람 마음 아이가?"

"아이고, 나는 남편 교육을 잘 못 시켜서 지금도 이렇구먼."

단순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이야기다. 우리 이야기이며, 내 가족의 이야기이다.

20150810_134844.jpg

그렇게 미용실은 정보 교류의 장이 되었다. 소위 "플랫폼"의 시작은 시장에서 출발해서 미용실로 끝나나 보다.

"아따 머리가 짧으니까 훨씬 시원하구먼. 얼굴이 더 작아보인다야."

빨리 이발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수업해야 하는데 누님은 자꾸만 이런저런 말을 한다.

"남자는 스타일이여. 헤어스타일에 따라서 얼매나 차이가 나는데."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을 남자의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는 스타일에 대해서 늘 무관심하게 살았는데 다시 생각해야겠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나의 헤어스타일은 어떤지, 어떤 느낌이지 찾아보기로 했다.

20150912_201757.jpg 이 사진도 2년 전 쯤으로 기억되네

그냥 머리는 짧고 길고가 전부라 생각하다 최근에 투블락이라는 스타일을 해 보니 나름 괜찮은 듯 하여 계속 그렇게 해 왔다. 윗머리를 길게 길러 내릴 생각이었는데 옆머리를 몇 번 정리하고 나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듯 하여 포기해버렸다.

20150929_222116.jpg 3년 전 사진

사진을 살피다 보니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같은 스타일로 부스스하게 사는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참 거시기하다.

20151003_145343.jpg
20151001_135754.jpg

헤어스타일에 변화가 없다. 이젠 머리카락도 좀 관리해야겠다. 하긴 옷관리도 제대로 안하는데 머리카락까지 언제 신경쓰고 살겠노? 그냥 편하게 살자 싶기도 한다.

20151017_180425.jpg 머리가 짧으니 애가 좀 말끔해 보이긴 하다. 인물이 아니라

이 년 전 가을의 헤어스타일도 그냥 거기서 거기다. 남자들을 돌아보면 참 다들 그렇고 그렇다. 그래서 남자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고 하는가 보다. 연애인들 보면 머리의 변신이 두드러지는데 일반인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20160329_112020.jpg

머리카락의 길이가 조금씩 차이가 날 때마다 인상이나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듯 하다. 늘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늘 같은 모습으로 유지할 수도 없고, 약간의 차이가 가끔은 큰 외형차를 만들기도 한다.

20160903_203834.jpg 일 년 전 여름

이때도 변함없는 그란 스타일이 참 아쉽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은 얼굴뿐이란 생각이다. 나오는 배와 줄어드는 근육과 온 몸이 찌뿌둥해지는 것 말고.

20160918_155854.jpg 이 사진도 일년 전 여름

매번 같은 헤어스타일이라니. 얼마나 인생을 무덤덤하게 살았는지 되돌아 본다. 정말 젠장이다. 머리카락이 인생과 무어 관련이 있냐 하겠지만, 그래도 이왕 사는 거 좀 더 재미나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러면서도 세상의 눈치 속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현실.

20160923_135446.jpg 작년 가을, 2016년 10월

제법 길었다. 여기서 더 인내하고 길렀으면 지금은 어느 정도 원하는 길이가 나왔을 법 한데 참지 못하고 가위를 댄 것이 잘못이었다. 무스나 스프레이나 왁스로 머리카락을 고정하며서 버티고 살아야 되는데 그런 거 바르는 게 귀찮으니. 원 참. 하긴 드라이기 한 번 사용하지 않으니 어찌 원하는 스타일이 나오겠나?


20160928_130429.jpg 2016년 1월쯤의 모습으로 기억

이때 헤어스타일은 좀 마음에 든다. 사진상으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날렵해 보이는 게 일단 머리스타일은 맘에 든다. 이 역시 다 내 눈에 비친 세상 모습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좌우가 바뀐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

20161111_135521.jpg
20161030_112410.jpg

비슷한 시기의 모습인데도 기분이 다른다. 머리카락을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서도 느낌은 차이가 크다. 역시 남자도 머리카락 정리를 잘해야겠다. 이래서 스타일 스타일 하나보다. 그런 미세한 차이가 사람의 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 하면서도 아쉽기도 하고, 인간의 평가 기준에 대한 이상한 불신도 생기곤 한다.

20161117_164436.jpg

옷 때문인지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미소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고 있지만, 오늘은 일단 헤어스타일만 보기로 하자.

20161219_185622.jpg

모자를 쓰니 또 다른 모습니다. 아마 미용실 누님이 말씀하신 그런 모든 것이 다 그런가 보다. 남자는 헤어스타일에서 차이가 엄청 난다는 그 말. 그래서 미용실을 하면 참 재미나다는 말도.

20170108_071758.jpg
20170108_133600.jpg

머리카락은 모자 밑에 숨었지만, 제법 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자 옆에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 때는 한창 길러보려고 했던 때였으니까.

20170221_080456.jpg 2017년 초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이발을 해버렸다. 아마 길어오는 앞머리카락이 귀찮았나 보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이 눈을 찌르는 것도 귀찮고. 그런데 옆머리와 뒷머리만 기르고 싶다고 하면 미용실에서도 그러면 이상하다고 한다.

"사람이 나이에는 좀 맞춰야제."

아내는 더욱 잔소리가 늘어난다.

"제발, 좀. 당신 개성이 중한 게 아니잖아요. 개성대로 살 거 같으면 어디 산에라도 가야지."

내 인생을 거의 포기한 아내도 이렇게 거들어 제치니 나도 별반 뾰족한 수가 없다.

20170305_130758.jpg
20170301_144011.jpg

꼭 일주일 전의 사진이다. 그 사이 머리 길이가 더 짧아졌다. 그래도 눈썹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칼이 귀찮긴 하다. 어중간하다는 느낌이다. 확 길면 더 좋겠거만.

20170308_164320.jpg 2017년 3월 8일

오늘 머리카락을 깍았다. 사실은 더 짧게 깍고 싶었으나, 미용실 누님의 손에 그냥 맡겨버렸다. 그래도 시원하다. 일단은. 곧 후회를 하겠지만, 일단은 머리가 가벼워서 좋다. 머리카락이 짧으면 남자는 돈이 많이 든다. 지저분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려면 자주 미용실에 가야한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 해결하긴 하지만, 그래도 돈이 많이 든다. 얼마 전 어느 미용실 앞에 붙은 남자 커트 비용 20,000을 보고 한참을 욕을 했다. 아마 이런 나를 사람들은 욕할 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비싼데는 15,000원이라 해서

"뭐시라?"

하고 나왔지만, 시내 쪽으로 가니 혀를 내두를 가격이 이발비다.

1402833323463.jpeg
1403650492202.jpeg

그 때나 지금이나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 헤어스타일. 참 징글징글하다. 4년 전으로 기억되는 사진 속에도 꼭 같은 스타일의 내가 있다. 도대체 뭐여?

1415507295734.jpeg 3년 전 사진

옛 사진이 없어 너무 아쉽다. 정말 20대와 30대를 너무 바보처럼 살았다. 완전. 그래서 인생은 돌아봐야 한다. 앞만보고 달릴 것이 아니다. 진짜 나는 삶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모든 이들이 다 그렇듯.

나의 암흑시기였던 20대 전부와 30대 중반까지. 잃어버린 아니 내가 버린 십 수년을 몇 년만에 다 살아내고 싶다. 이때 스타일은 내가 봐도 별로다.


13631847888530.jpg
1418222241510.jpeg

증명사진인데 이 정도 스타일이면 무난한 듯 하나, 조금은 귀찮은 것도 사실.

1418225844439.jpeg
1424707114461.jpeg
1424706993855.jpeg
1473250291228.jpg

다 비슷한 시기에 찍은 사진인 듯 한데 이때도 스타일은 고만고만하다. 참 심심한 스타일이다.

1479437282288.jpg
1478587731686.jpg

위 사진은 아마 작년 연말 즈음 같다. 이때도 비슷. 저때도 비슷.

13741496854200.jpg 고3 졸업 사진 모습

뭐, 이때나 그때나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이땐 머리에 뭔가를 잔뜩 바른 느낌이란 것을 제외하면.

아마 무스였을 것이다. 그땐 무스가 최고였으니.

13742412989240.jpg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느다

세상을 살면서 나름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늘 마음처럼 되는 것이 세상이 아니다. 오늘은 나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서 아마 다른 데 찾아보면 사진이 더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늘 사진을 찍는 입장이다보니 찍히는 일이 별로 없어 나의 사진도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은 남자의 헤어스타일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날이었다. 미용실 누님에게 땡큐를 보낸다.

C360_2015-08-08-14-21-47-955.jpg
C360_2017-03-04-20-01-02-093.jpg

일년 전 짧은 머리카락과 지난 주 조금은 긴 머리카락을 비교하면 확연히 이미지에서 느낌 차이가 온다.

IMG_20151014_205748.jpg
IMG826.jpg
IMG997.jpg
IMG1610.jpg
IMG1893.jpg
IMG2388.jpg
IMG2484.jpg
IMG2652.jpg
IMG2751.jpg

헤어스타일은 남자에게도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도 멋지게 인생을 즐기는 그런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물론 멋진 헤어스타일로 자신만의 이미지도 잘 만들어 가면서.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헤어스타일이나 외모나 옷차림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마음으로 마음은 말로, 말은 행동으로, 행동은 다시 인격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도 잘 알지만 고칠 점이 많다.


잘 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서의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