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치 않게 산을 오르다 온갖 잡념이 머리를 스쳐 마음에 내린다
2017년 4월 18일. 오늘은 우리가 말하는 천재 '이상'이 요절한 날이라고 한다. 그 날을 내가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른 아침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창신고 바로 뒤에 있는 얼마전 조성된 작은 공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팔룡공원 자연학습장이라고 예쁜 팻말이 조용한 아침 팔룡산을 찾은 나를 반긴다. 왜 이런 정자는 팔각으로 지었을까? 동양의 팔괘가 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까?
팔괘
'음양(陰陽)'의 세계관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삼라만상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 바로 팔괘(八卦)다. 음과 양은 물질의 궁극적인 본질이며, 그것들의 근원이자 통일체가 바로 '태극(太極)이다.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에는 이 태극에서 생겨난 세계관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역(易)에 태극이 있으며,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옅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오고, 이 두 개의 의(儀)를 둘로 나눈 것을 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이분하면 팔괘가 된다. 즉, 2×2×2=8인 것이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고 순환하는데, 이것들의 조합을 통해 자연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팔괘의 근본 사상이다. 실제로는 효(爻)라 불리는 산목(算木 : 고대 중국에서 계산할 때 사용하던 도구)을 써서 나타낼 수 있다.
후세가 되면서 팔괘는 사상적인 개념이 아닌 점술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易)이라 불리는 것은 이 팔괘를 상괘와 하괘로 나누고, 또 그것들을 조합해서 64괘로 만들어 사용한다. 한대(漢代)의 역학자들은 '상수학(象數學)'으로 『역경』을 해석하면서, 천문학·역법(曆法)·음율학 등을 동원해 구체적인 사상(事象)을 괘로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으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길흉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맞아도 팔괘, 맞지 않아도 팔괘." 주로 길거리의 역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이 말의 근본은 복희(伏羲)가 창안했던 사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점술의 방법은, 우선 서죽(筮竹 : 대나무로 만든 얇은 봉으로 50개가 한 조를 이룬다)을 임의로 나누어서 음과 양의 효로 바꾸는 과정을 여섯 번 거치면 괘가 나온다. 이렇게 해서 얻은 괘는 12개월이나 인체의 각 부위의 상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 등을 계시한다. 팔괘도(八卦圖)가 원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모든 사물은 순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괘 (도교의 신들, 2007. 10. 26., 도서출판 들녘)
음양의 이치에 따라 팔각정을 지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역을 열심히 읽었는데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아마 음양의 이치에 따라 비울 것은 비우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내가 돌머리는 아니라는 위로를 삼아본다.
팔룡산 맑은 물이 여러 수생식물을 키운다. 아직은 자리잡지 못한 듯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꼭 멋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리라 믿는다. 도심에 이렇게 작고 아담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인공미가 너무 강하다는 것. 하긴 요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나도 깔끔히 정리된 모습이 보기 좋으니 참 우습다.
피리 몇 마리가 뛰어 놀 것이라 예상했는데 멋진 황금잉어들이 자리잡고 있다. 음! 황금잉어보다는 우리 동네 토종 피리들이리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한다.
숲 속의 바람도 시원하고, 햇살도 따사롭다. 잠시 걷기에 너무도 좋은 곳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꼭 놀러 와야겠다. 산새들의 노랫소리에도 귀가 시원하다. 이런 여유를 평일 오전에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한 놈이다. 돈이야 조금 못번들 어떠리?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원을 둘러보니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다. 그리고 한바퀴 돌아서 내려오려다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산길을 오르고 있는 날 만났다. 왜 갔을까? 가끔은 살다보면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나보다.
시원한 약수물에 목을 축이고 나니 조금만 더 올라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그냥. 시간이 조금 여유되니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산을 오르다 발견한 작은 이정표. 자연동굴법당이 있단다. 낚였다.
그렇게 산을 천천히 올랐다. 산 중턱 어디쯤에 동굴이 있겠지. 동굴은 산 정상에 있는 법이 아니니. 그렇게 걷기를 삼십분쯤. 아니 정확히 시간은 모르겠다. 그렇게 그냥 뒤도 보고 옆도 보고, 길 옆 작은 풀과 인사하고 덕석에 피어나는 새싹과도 인사하며 올랐다.
어느새 저 멀리 마산만이 보인다. 이런. 여기까지 왔는데 왜 보이지 않을까? 비가 왔지만 미세먼지때문에 시야가 그리 좋지 않다. 숲 속에서는 공기 좋다고 연신 노래 불렀는데, 막상 탁 트인 곳에 이르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다. 이게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르고 올라 또 올라.
드디어 암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동굴은 어디쯤에 있을까? 동굴은? 작은 법당이라 했는데, 제법 온갖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도대체 누가 왜 언제 이 곳에 이런 법당을 지었을까? 왜? 그리고 어떻게? 혼자 걷기도 힘든데.
높은 곳에 오르는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높은 곳을 올라가고 싶은가 보다. 더 멀리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평지는 어렵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시야가 좁다. 그런데 올라가면 갈수록 많은 것이 보인다. 그런데 말이지. 자세히는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멀리 작게 보이는 저 건물들이 그림의 떡이란 사실도 알아야 한다.
높은 곳에서는 그저 하늘과 바람과 풀과 나무가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전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잊지말라.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며 자신이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을.
눈 앞에는 그저 나무 몇 그루와 그리 푸르지 않은 하늘과 공기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고 물론 작은 암자도. ㅎㅎ
정치인 여러분! 그리고 높은 곳에 오르고자 온갖 술수를 쓰는 분들. 잘 새겨들으세요.
이 것이 자연동굴 법당이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려오는 길의 바위가 더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나보다.
꽃이 예쁘다. 원래 꽃이 아니었더라도 예뻤고, 예쁘다 하지 않아도 원래 저런 모습으로 존재했다. 인간이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산에 오르다 나 여기까지 왔다가 간다. 놀다보니 이렇게 정신이 없다라는 것을 자랑질하고 싶었나보다. 청바지에 운동화라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아마 양복을 입었어도 올랐을 터.
나무도 사진 속에 담아보고, 멀리 마산의 모습도 담아본다.
뭔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다시 보니 그 순간의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왜 오르려 하는걸까?
오를 때는 힘들지만 덜 위험하고, 내려올 때는 편하지만 더 위험하다. 이 사실이 다시 떠 오른다. 어떤 사람들처럼. 오르는 것이 힘들지만 덜 위험하지만, 내릴때는 확실히 조심해야 한다. 인생사가 다 그런 것 아닐까?
내리는 길은 언제나 조심해야한다. 언제나 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오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갈래길을 만난다. 프로스트가 그랬던가?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나 역시 잘 닦이지 않은 길을 택했다. 그런데 가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길이란 누군가가 반드시 먼저 다녀간 흔적이 있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간 길은 잘 닦여져 있다는 것만 빼고. 반드시 길은 누군가가 먼저 갔다. 길이란 그런 것이다.
선택은 언제나 결과를 동반한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인가? 우리가 시간을 두 번 산다면 가능한 일은 두 길을 모두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길은 두 길이 아닌 너무도 많은 길. 백만번을 살아도 다 가보지 못할 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결과를 원하는가? 그리고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낼 것인가?
그리고 왜 그 선택을 했는가? 나도 고민해봐야겠다.